▲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영향으로 한반도 대기 중 방사능 오염이 확인된 가운데,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와 서울환경연합 여성위원회 소속 회원들이 방사능 오염 비에 맞지 말 것을 알리는 캠페인을 벌였다.
유성호
나는 여기서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갑상선 암환자가 발생했는지를 따지고 싶지는 않다. 다만 체르노빌 수준(국제 원전사고 평가등급 7레벨)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했는데도 한국 정부의 대응 수준이 너무 안이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물론 후쿠시마 사고는 체르노빌과 달리 순간 피폭량이 적고 장기간에 걸쳐 꾸준히 방사능을 내뿜고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진행형이며,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심각한) 방사능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에 대한 대비책을 세워둬야 하는 것이 정부의 책임이다.
그런데도 정부 당국은 한반도는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할 뿐 이제까지 아무런 대비책도 세우지 않고 있다. 최소한의 국민행동 수칙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한반도에서도 연일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고, 국내산 시금치와 상추와 같은 야채는 물론이고 고등어와 삼치 같은 어류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
한국은 안전하다는 말은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 때도 정부에서 똑같이 했던 말이다. 당시 과학기술처는 아직 방사능 낙진이 이동하고 있는 시점인 5월 1일 기자회견을 열어 단순히 "빗물에 방사능 낙진이 없으니 안심하라, 우리나라는 별 피해가 없다"고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이 적절히 대비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했다.
또한 당시 5월 5일 충주 관측소에서 빗물 중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는데도 가장 주의해야 할 우유와 아채 등의 섭취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치가 없이 "빗물을 마시지 말라"는 현실성 없는 지침만 내렸을 뿐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후 방사능 낙진에 대한 정부 조사역시 매우 부실하게 진행됐다. 당시 방사능 낙진에 대한 빗물 조사는 11개 관측소에서 실시했다. 하지만 우유에 대한 조사는 충주·대전 등 불과 2개 지역에서 각각 5월 6일과 12일 한 차례씩만 진행했다. 기타 채소에 대해서는 서울·충주·대전 등 3개 지역에서 역시 각 한 차례씩만 조사됐고 공기 부유진도 대전 1개 지역에서 한 차례만 조사했다.
반면 우리보다 더 멀리 떨어진 일본은 체르노빌 사고 직후, 30개 현을 포함 총 35개의 관측소에서 빗물뿐만 아니라 우유, 채소, 식수 등에 대한 체계적 오염조사를 벌였다. 특히 일본은 방사능 낙진이 일본에 처음 떨어진 5월 5일 전후부터 6월 5일경까지 약 1개월간 35개 지역 중 30개 지역에서 우유에 함유된 요오드-131의 오염수준을 조사하였다. 또한 일본 정부는 같은 기간 토양에 대한 조사를 벌여 약 20가지의 방사성 물질을 검출했다.
원전의 대형 재난 시 각국 정부들이 공공 안전을 위해 가장 우선시 하는 조치는 방사성 요오드의 갑상선 축적을 막기 위해 잠재적 낙진 확산지역에서 요오드 대체재(요오드화 칼륨, potassium iodide)를 지급하는 것이다. 요오드 대체재를 복용하게 되면 충분한 요오드를 축적한 갑상선이 방사성 요오드 등으로부터 보호되기 때문이다. 또한 방사성 요오드의 주요 축적경로인 우유의 음용을 자제하도록 당부한다.
실제로 구소련과 인접해있던 폴란드의 경우 사고가 알려진 직후 약 1800만 명의 국민들에게 요오드 대체재를 지급, 방사성 요오드의 갑상선 축적을 방지했다. 또, 이후에도 국민들에게 우유나 채소류 등의 오염가능 식품 섭취를 삼가도록 당부하였다. 폴란드는 벨로루시, 우크라이나 등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당사국들과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여 년간 갑상선암 발생률이 거의 증가하지 않았다.
이 밖에 스웨덴을 포함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체르노빌사고 직후 국민들에게 요오드 대체재를 지급하고 음식물 섭취에 대한 주의지침을 제공했다. 이 지역에서도 갑상선암이 다른 암에 비해 특별히 상승하지는 않았다고 보고되었다. 이렇게 본다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한 직후 미국에서 방사능이 검출되자 약국에서 요오드를 사재기하던 모습이 지나친 호들갑만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의 10년 후는 누가 책임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