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왕님, 저희를 너그럽게 받아 주소서"

여수다이빙연합회. GS칼텍스 동호회 무사기원 개해제 열어

등록 2011.04.25 11:36수정 2011.04.25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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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해제는 다이버들이 한해의 안전한 다이빙 활동을 기원하며 용왕님께 지내는 일종의 고사를 말한다.
개해제는 다이버들이 한해의 안전한 다이빙 활동을 기원하며 용왕님께 지내는 일종의 고사를 말한다.심명남
개해제는 다이버들이 한해의 안전한 다이빙 활동을 기원하며 용왕님께 지내는 일종의 고사를 말한다. ⓒ 심명남

바다를 동경하는 스쿠버 동호회원들이 해마다 여는 행사가 있다. 본격적인 다이빙 시즌을 앞두고 실시하는 개해제다.

 

개해제(開海際)는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하다. 전국의 많은 산악인이 산악회의 무사산행을 기원해 시산제를 올리듯, 개해제 역시 다이버들이 한 해의 안전한 다이빙 활동을 기원하며 용왕님께 지내는 일종의 고사를 말한다. 미천한 인간들은 용왕님이 사는 바다에 뛰어들어 자칫 부를 수 있는 자만과 만용의 실수에 대한 용서를 청한다. 용왕님께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을 할 수 있도록 허락을 청하는 일종의 신고식이다.

 

지난 23일(음력 3월 21일) 전라남도 여수시 종화동 해안 부두 앞에는 돼지머리와 함께 고사음식이 차려졌다. 이번 행사는 생활체육 여수스킨스쿠연합회와 GS칼텍스 다이빙 동호회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다이빙하기에는 수온이 아직 차갑다. 4월이 지나면 본격적인 다이빙 시즌으로 접어든다. 개해제는 수중동호인에 대한 묵념에서 시작된다. 이후 잠수인 환경보호 헌장 선서를 낭독한다. 선서내용에는 잠수 흔적을 남기지 말고 야생 물고기를 괴롭히지 않는다 등 잠수인이 지켜야 할 8가지 사항이 들어 있다.

 

 종화동 해양공원 앞 부두에서 생활체육 여수스킨스쿠버다이빙 동호회원들이 개해제를 준비하고 있다.
종화동 해양공원 앞 부두에서 생활체육 여수스킨스쿠버다이빙 동호회원들이 개해제를 준비하고 있다. 심명남
종화동 해양공원 앞 부두에서 생활체육 여수스킨스쿠버다이빙 동호회원들이 개해제를 준비하고 있다. ⓒ 심명남

이민식 여수스킨스쿠버연합회 회장은 "올해도 무사고로 안전한 다이빙을 즐기고, 여기에 모인 진정한 바다의 사나이들이 지역사회에서 해양 지킴이로 멋진 활동을 해 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성스럽게 차려진 고사상에서 대표회장의 초헌이 이루어졌다. 초헌은 용왕님께 처음으로 잔을 올리는 것을 뜻한다. 사회를 맡은 김남중 부회장(GS칼텍스동호회 소속)의 독축이 이어진다. 독축은 용왕께 고하는 축문이다. 축문 내용이 사뭇 간절하다.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축문은 오대양(五大洋)을 다스리는 신 중의 신, 바다의 용왕(龍王)에게 "신묘년(辛卯年) 태양도 당신의 원대한 생명력을 즐겁게 노래하는 때에 두려운 마음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히 개해제(開海際)라는 자리를 마련하옵나이다"라고 시작됐다.

 

이어 김 부회장은 "바야흐로 온 누리에 다른 생명의 찬가가 꽃잎처럼 솟구치는 이 봄날에 용왕님을 찾아뵙고 아뢰올 것은, 저희 이제부터 올해의 다이빙을 시작하고자 하오니 당신의 품 안에 안기는 저희를 너그러이 받아 주시옵소서"라고 고했다.

 

김 부회장은 "무릇 사람이 땅 위에서 태어나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분부대로 땅에서만 살아왔으나, 미천한 머리로 고안해 낸 스쿠버 장비(裝備)의 힘을 빌려 물속을 헤엄치게 되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아울러 김 부회장은 "용왕이시여! 당신의 영역에서 있을지 모르는 저희의 만용이나 실수, 무엄한 행동들을 자애롭게 받아주시고 허락하여 주시옵소서"라며 안전하고 즐거운 다이빙을 기원했다. 

 

 개해제에서 제례를 하면서 회원들이 성의껏 준비한 봉투가 돼지머리에 쌓여간다.
개해제에서 제례를 하면서 회원들이 성의껏 준비한 봉투가 돼지머리에 쌓여간다. 심명남
개해제에서 제례를 하면서 회원들이 성의껏 준비한 봉투가 돼지머리에 쌓여간다. ⓒ 심명남

축문이 끝나고 동호회원들이 제례를 올렸다. 회원들은 성의껏 준비한 봉투를 돼지머리에 꽂고 절을 했다. 달나라 여행상품을 만들고 있는 시대에 웬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할지 모르지만 그들 나름대로 이 행사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찾는다고 했다. 말로만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인간사다. 

 

일주일에 2번 정도 다이빙을 즐긴다는 김장수(여수스킨스쿠버연합회부회장)씨는 "바닷속이 무섭다는 마음이 전혀 안 들지만 고사를 모시면 왠지 누군가 바닷속에서 동료를 지켜준다는 마음이 들어 위로가 많이 된다"고 털어놨다. 그는 여수 지역 다이빙 회원은 물론, 모든 스쿠버의 무사 다이빙을 기원했다.

 

동호회 회원 박학수씨는 "수중장비에 의존해 바닷속에 들어가면 물 밖 세상에는 볼 수 없는 말로만 전해 듣던 전설을 경험하는 느낌이다"고 다이빙의 매력을 설명했다. 박씨는 "바닷속 한가운데 솟아있는 크고 작은 멋진 바위들, 물속을 헤엄쳐 다니는 고기떼들, 바닷속의 무중력의 세계에서 진정한 '나'를 발견한다"고 전했다.

 

 개해제를 마친 GS칼텍스 동호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개해제를 마친 GS칼텍스 동호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심명남
개해제를 마친 GS칼텍스 동호회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심명남

 

덧붙이는 글 |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2011.04.25 11:36ⓒ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전라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개해제 #다이빙 #생활체육 여수스킨스쿠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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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하고 싶은 일을 남에게 말해도 좋다. 단 그것을 행동으로 보여라!" 어릴적 몰래 본 형님의 일기장, 늘 그맘 변치않고 살렵니다. <3월 뉴스게릴라상> <아버지 우수상> <2012 총선.대선 특별취재팀> <찜!e시민기자> <2월 22일상> <세월호 보도 - 6.4지방선거 보도 특별상> 거북선 보도 <특종상> 명예의 전당 으뜸상 ☞「납북어부의 아들」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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