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뿔사, 그러나 '무릉도원'의 복사꽃이라고 여겼던 꽃은 알고 보니 살구꽃이었다. 살구꽃은 연분홍인데 복사꽃은 진분홍이다.
장호철
무르익은 봄은 시대를 초월한다. 요즘 보충 시간에 조선 후기에 널리 불린 잡가 '유산가(遊山歌)'를 가르치고 있는데 거기에도 봄은 난만(爛漫)하다. '꽃이 활짝 많이 피어 화려함'을 뜻하는 난만은 유산가 첫 머리의 '화란춘성(花爛春城)'과 '만화방창(萬化方暢)'의 결과다.
유상앵비(柳上鶯飛)는 편편금(片片金)이요, 화간접무(花間蝶舞)는 분분설(紛紛雪)이라.삼춘가절(三春佳節)이 좋을씨고 도화만발 점점홍(桃花滿發點點紅)이로구나.어주축수 애산춘(漁舟逐水愛山春)이라던 무릉도원(武陵桃源)이 예 아니냐.아니나 다를까, 유산가에서도 난만한 봄의 풍경을 '무릉도원(武陵桃源)'이라 노래한다. 그 무릉도원은 '버들 위를 나는 꾀꼬리'와 '꽃 사이를 춤추며 나는 나비', '만발한 복사꽃'으로 황홀하다. 노랑과 흰색, 붉은 색의 색채 대비가 어지럽다.
무릉도원은 서양 사람들의 '유토피아(Utopia)'에 대응하는 동양의 이상향이다. 유토피아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듯이 무릉도원도 상상과 동경의 공간이다. 중국의 시인 도연명(365~427)의 <도화원기(桃花源記)>에 나오는 이 속세를 떠난 이상향은 곧 '복사꽃이 흐드러진 곳'이다.
복사꽃 흐드러진 이상향 '무릉도원'한 어부가 물에 떠내려 오는 복사꽃잎을 따라 오르다 발견한 이 아름다운 풍경 '도원경(桃源境)'은 시인 자신도 인간이 찾을 수 없는 곳이라 말한다. 하긴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었다면 누가 거기를 그리워하였으랴! 무릉도원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거기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것이다.
왜 동양의 이상향에 핀 꽃이 복숭아일까. 왜 하고 많은 꽃, 하고 많은 과일 가운데 복숭아일까. 복숭아는 동양문화권에서 불로불사와 신선세계, 그리고 이상향의 상징이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에는 복숭아와 관련된 신선설화가 많다.
우리 민속에서 복숭아는 장수의 의미도 갖는데 이는 <서왕모와 천도복숭아>라는 전설에서 비롯한다. 천도복숭아는 천상에서 열리는 과일로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고 장수한다고 한다. 따라서 세속을 떠난 이상향에 도화가 우거져 있었던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우리 선인들이 복숭아나무가 특별한 주력(呪力)을 갖추고 있다고 믿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복숭아나무는 귀신을 쫓는 '축사(逐邪)의 힘'을 지녔다. 집안에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고 제상에도 복숭아를 올리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시인은 가고 노래만 남았다. 무릉도원의 선경을 일러 '도원경'이라 부르면서 이상향을 향한 인간의 발원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마음속에 '이어도'를 그리며 살았던 제주 사람들에게 그게 '수중 암초'이며, 거기 가라앉혔다는 '대한민국 영토'라는 동판 표지의 의미는 어떻게 다가갔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