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과학이 맞장 뜬다면?

[서평] 버트런드 러셀의 역작 <종교와 과학>

등록 2011.04.21 15:26수정 2011.04.21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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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지만 누를 길 없이 강렬한 세 가지 열정이 내 인생을 지배해왔다. 사랑에 대한 갈망, 지식에 대한 탐구욕, 인류의 고통에 대한 참기 힘든 연민이 그것이다. 이런 열정이 나를 이리저리 몰고 다니며 깊은 고뇌의 대양 위로, 절망의 벼랑 끝으로 떠돌게 했다."

1870년 5월 18일 출생, 1970년 2월 2일 영면. 20세기 영국의 지성을 대표하는 수학자이자 철학자. 반전 평화주의자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되어 6개월 동안 감옥에 구금된다. 1945년 원자폭탄이 발명되자 수소폭탄 발명을 예견하면서 핵무기 반대운동과 평화운동을 전개한다. 그의 이름은 버트런드 러셀.


수학자였던 그는 <수학원리>로 수리철학과 기호논리학에 공헌하였다. 철학으로 활동영역을 넓혀 정치·교육·인생에 대한 평론을 남긴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는 노동하지 않는 특권층을 철폐함으로써 인류전체의 복지와 문화를 주장하였다. <서양철학사>, <권력> 등의 저작을 남겼고, <종교와 과학>으로 1950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종교와 과학, 무엇이 다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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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녁

러셀은 종교와 과학이 인간의 사회생활을 지탱하는 기둥이라고 말한다. 종교는 인간정신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왔으며, 과학은 그리스인과 아랍인들 사이에서 때때로 등장했다고 한다(이런 점에서 러셀도 중국이나 인도의 과학적 발견이나 업적에 인색하다). 과학은 16세기에 갑자기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한다.

과학은 관찰과 추론에 기초하여 세계와 우주에서 발생하는 특정 사실에 내재하는 법칙을 발견하려고 한다. 발견된 사실을 서로 연결하여 운이 좋으면 미래의 현상까지 예측 가능하도록 하는 법칙성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과학은 언제나 잠정적이고, 현재의 이론이 조만간 수정되어야 할 것이라 예상하며, 방법론이 완벽하거나 합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인류역사에 등장했던 중요한 종교들에게는 공통된 세 가지 측면이 있다. 예배장소와 교리, 개인의 도덕률이 그것이다. 종교의 교리는 영원불변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과학이론과 차이를 드러낸다. 절대적인 권위를 내세우고, 그것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과 귀의가 종교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기독교가 이런 점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중세의 관점과 현대과학의 관점에 자리하는 중요한 차이를 러셀은 권위에서 본다.

"스콜라 철학자들에게 성경, 기독교의 교의 그리고 (거의 동등한 수준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과학자들은 어떤 중요한 권위자가 참이라고 말했다 해서 그 명제를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그들은 감각의 증거에 호소했고, 사실에 기초했다고 믿는 교리만을 주장했다."(15쪽)


천문학에서 맞붙은 과학과 기독교

<종교와 과학>에서 다루어지는 종교는 오로지 기독교다. 러셀은 기독교를 신교와 구교로 나누어 과학과 대비하여 설명한다. 따라서 불교나 이슬람 같은 종교는 등장하지 않는다. 기독교 신학과 과학 사이에 벌어진 최초의 주목할 만한 갈등은 천문학 논쟁이었다.

"사람들은 하늘, 태양, 달이 아니라 지구가 돈다고 주장하는 건방진 점성술사의 말에 귀 기울인다. 똑똑해 보이고자 하는 자는 누구나 새로운 체계, 가장 훌륭한 체계를 고안해내야 한다. 이 멍청이는 천문학을 송두리째 뒤집어엎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지구가 아니라 태양에게 멈추라고 명령하셨다." (23쪽)

1543년 코페르니쿠스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를 출간했을 때 루터가 한 말이다. 어떤 결정적인 전환을 말할 때 '코페르니쿠스적 전기'라고 한다. 기원후 130년 무렵 프톨레마이오스가 정립하였고, 그 후 1400년이 넘도록 부동의 권위를 인정받아온 '천동설'에 대한 정면반박이 시작된 것이다. 그것에 대한 기독교의 반발은 상상 이상이었다.

칼뱅(1509-1564)은 "누가 감히 코페르니쿠스의 권위를 성령의 권위 위에 놓을 것인가?" 라고 일갈했다. 그러나 지동설은 덴마크의 천문학자 티코 브라헤(1546-1601)의 연구 성과를 거쳐, 이탈리아의 신학자이자 천문학자 조르다노 브루노(1548-1600)의 화형을 지나,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의 행성운동의 세 가지 원리의 발견에까지 이른다.

하지만 1616년 2월 26일 종교재판정은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에게 지동설을 포기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재판정이 내세운 논리는 다음과 같다.

"태양은 중심이고 지구의 둘레를 돌지 않는다는 첫 번째 명제는 신학적으로 볼 때 어리석고 부조리하며 그르고, 성서에 명백히 반하기 때문에 이단이다. 지구는 중심이 아니고, 태양 둘레를 공전한다는 두 번째 명제는 철학적으로 부조리하고 그르며, 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적어도 참된 믿음에는 반한다." (35쪽)

갈릴레오 전기에 등장하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이 사실인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브루노가 화형당한 지 불과 16년 뒤에 벌어진 재판에서 그가 느꼈을 불안과 공포의 그림자는 확연하게 다가온다. 데카르트(1596-1650)는 소식을 듣고 네덜란드로 달아났다고 한다. 아이작 뉴턴(1642-1727)은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프린키피아>(1687)로 행성뿐 아니라 혜성의 운동까지 설명함으로써 천문학에서 과학의 최종승리에 쐐기를 박는다.

악마학과 의학

중세 말기부터 근대까지 유럽과 북아메리카 일대에서 행해졌던 마녀나 마법행위에 대한 추궁과 재판 및 형벌에 이르는 일련의 행위를 마녀사냥 혹은 마녀재판이라 한다. 현대에는 이것을 전체주의의 산물이나 (정치학) 집단 히스테리의 산물(심리학)로 간주하고 있지만, 전근대적인 문화나 고대의 전통을 중시하는 사회에서는 아직도 근절되지 않았다.

러셀은 <종교와 과학>에서 악마와 관련된 종교행위와 의학발전을 대립시킨다. 1348년 유럽에서 발생한 흑사병은 온갖 미신의 발생 원인을 제공하였다. 유럽인들이 하느님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방법은 유대인학살과 마녀사냥이었다. 그 결과 1450년부터 1550년까지 독일에서 10만 명의 마녀가 화형에 처해졌다.

회의주의가 득세한 17세기가 되어서야 그들은 유령과 마녀의 존재를 믿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1712년까지, 아일랜드는 1730년까지 마녀를 처형했다. 프랑스에서는 1718년, 에스파냐에서는 1780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마녀들의 화형이 중지되었다. 아일랜드에서 마녀화형을 폐지하는 법안이 통과된 것은 고작 1821년의 일이었다고 전한다.

중세에는 질병과 치료가 미신적이고 임의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한 연구 없이 과학적인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가 해부에 반대했기 때문에 획기적인 치료방법은 출현하지 않았다. 해부학보다 늦게 성립한 생리학은 혈액순환을 발견한 윌리엄 하비(1578-1657)에 와서야 과학적인 모습을 갖추게 된다.

종교와 과학의 접점 그리고 우리의 과제

"만약 종교에 적대적이지 않거나 무관심하지 않다면 현대의 과학자들은 우주적 목적에 대한 믿음에 집착한다. 자유주의적인 신학자들도 그것을 교리의 중심요소로 삼는다. 윤리적으로 가치 있는 어떤 것을 향해 나아가는 진화라는 개념을 공유한다."(168쪽)

러셀은 과학과 종교의 접점을 '우주적 목적'이라고 규정한다. 우주생성의 원인, 지구의 냉각과 생명체 출현, 그것의 의미를 과학적인 신학자와 종교적인 과학자의 출현이라고 믿는 견해가 우주적 목적이다. 우주적 목적에는 유신론적(창조설), 범신론적(인간과 신의 영원) 그리고 출현적(3단계 진화론)이라는 세 형태가 존재한다고 러셀은 말한다.

<종교와 과학>의 저자는 이런 세 가지 형태의 우주적 목적을 통렬하게 반박한다.

"지금까지 일어난 일은 우주가 선의를 품고 있다는 증거인가? 인간을 그토록 찬미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자나 호랑이, 개미는 어떤가? 잔인하고 불의하며 전쟁을 일삼는 인간들의 세계보다 나이팅게일과 종달새와 사슴의 세계가 낫지 않은가? 우주적 목적을 믿는 사람들은 우리의 지성을 중시하지만, 그들의 저술은 그것을 의심하게 한다."(194)

이런 전제 위에서 러셀은 과학기술이 도달한 폭력적 양상을 비판하면서 과학의 악영향을 고발한다. 군수산업의 흥성, 일본의 제국주의화, 러시아와 독일의 폭력적인 파시즘 경향 등의 원인을 과학에서 찾는 것이다. 과학이 무너뜨린 교회의 특권적 지위를 물려받은 신성불가침한 현대국가와 정부에 대한 과학자와 지식인의 저항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미래에도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 다윈 같은 사람들이 등장할 것이다. 만약 그들이 과업을 수행하고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방해를 받는다면 인류는 정체될 것이고, 새로운 암흑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새로운 진리는 종종 불편하다. 권력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새로운 진리야말로 잔인함과 편협함으로 얼룩진 역사에서 총명하면서도 방종한 인류가 이루어낸 가장 중요한 성과물이다." (224-225쪽)

덧붙이는 글 | <종교와 과학>, 버트런드 러셀 지음, 김이선 옮김, 동녘, 2011.


덧붙이는 글 <종교와 과학>, 버트런드 러셀 지음, 김이선 옮김, 동녘, 2011.

종교와 과학 - 러셀이 풀어쓴 종교와 과학의 400년 논쟁사

버트런드 러셀 지음, 김이선 옮김,
동녘, 2011


#기독교 #과학 #마녀사냥 #천문학 #우주적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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