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갈라놓은 쌍둥이 형제의 운명

[리뷰] 장 클로드 무를르바 <죽은 왕의 슬픔>

등록 2011.04.21 10:34수정 2011.04.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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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왕의 슬픔> 겉표지
<죽은 왕의 슬픔>겉표지청어람
전쟁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다. 크게는 한 국가의 운명부터 작게는 한 개인의 삶까지. 전쟁이 터지면 사지 멀쩡한 젊은이들은 징집돼서 전장으로 떠나고 남은 가족들은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목숨을 걸고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들도 그렇지만 남아서 자식이나 형제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가족들의 삶도 이전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부상자와 시신이 널려 있는 전장에서의 기억은 군인의 남은 삶에도 영향을 미친다.


판타지 소설 속에서 터지는 전쟁은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장 클로드 무를르바의 2009년 작품 <죽은 왕의 슬픔>에서 전쟁은 쌍둥이 형제의 삶을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끈다.

작품의 무대는 가상의 대륙인 '작은 땅' 프티트 테르와 '큰 땅' 그랑드 테르다. 열 살의 쌍둥이 형제인 알렉스와 브리스코는 태어나서 한 번도 프티트 테르를 떠나 본 적이 없다. 브리스코는 단단한 골격에 큰 체격인 데 비해 알렉스는 날씬한 몸에 짧은 갈색 머리다.

늙은 왕이 죽고 시작된 전쟁

비슷한 키의 형제는 거리에 나가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모습까지 똑같다. 두 아이는 거리가 조금이라도 생기면 떨어지지 않기 위해 반사적으로 서로의 팔을 잡았다. 이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된 것처럼 보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했다.

형제는 자신들이 한날한시에 태어난 쌍둥이라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알렉스가 태어나던 날 밤에 마녀라고 알려진 노파가 갓 태어난 아기를 알렉스의 집으로 데려온다. 그리고 알렉스의 부모에게 전해주며 쌍둥이가 태어난 것으로 주변에 알리라고 신신당부한다. 알렉스의 부모는 그 아기에게 브리스코라는 이름을 붙이고 지금까지 함께 키워왔다.


소년들의 평범했던 삶은 프티트 테르의 늙은 왕이 죽으면서 한순간에 바뀌고 만다. 늙은 왕의 친아들은 10년 전 사촌 형제인 게롤프에게 살해당했다. 왕은 게롤프를 그랑드 테르로 내쫓았고 게롤프는 그곳에서 프티트 테르를 점령할만한 힘을 키웠다.

왕의 장례식이 있고 나서 며칠 후에 브리스코는 정체불명의 인물들에게 납치당한다. 여러 가지 정황상 브리스코는 게롤프의 부하들에게 납치된 것 같다. 알렉스와 그의 부모는 슬픔과 혼란에 빠지지만 그것도 잠시, 게롤프가 전쟁을 준비 중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 전쟁을 준비하면서 왜 브리스코를 납치했을까, 알렉스와 브리스코는 언제 어디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브리스코의 출생에 얽힌 비밀

<죽은 왕의 슬픔>은 판타지 소설이지만 마법이나 인간과 비슷한 다른 종족들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작가는 거대한 마법이 펼쳐지는 판타지의 세계가 아니라, 전쟁에 휘말려버린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흐르고 알렉스도 전장으로 향한다. 10살이던 소년이 군에 입대할 만큼 시간이 흘렀으니 전쟁도 참 지긋지긋하게 오래 계속된 것이다. 알렉스는 전장에서 죽음의 공포에 떨기도 하고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장문의 편지를 쓰기도 한다. 운명적인 사랑에도 빠진다. 대륙을 정복하려는 게롤프의 야욕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고통과 불행으로 물들어간다.

프티트 테르의 왕도 자신의 죽음과 함께 전쟁이 시작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친아들을 죽인 게롤프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도 개과천선하리라고 믿지 않았을까. 하지만 게롤프는 오히려 더욱 난폭하게 변해갔다. 죽은 왕도 그것 때문에 슬펐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죽은 왕의 슬픔> 장 클로드 무를르바 지음 / 김동찬 옮김. 청어람 펴냄.


덧붙이는 글 <죽은 왕의 슬픔> 장 클로드 무를르바 지음 / 김동찬 옮김. 청어람 펴냄.

죽은 왕의 슬픔

장 클로드 무를르바 지음, 김동찬 옮김,
청어람, 2011


#죽은 왕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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