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명> 겉그림.
해문출판사
서점의 베스트셀러 코너 앞에 있다 보면 재밌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시대가 보인다고 할까. 한창 '정의'를 묻는 책이 인기더니 어느 샌가 '위로'를 건네는 책들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최근에는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정상에 올랐다. 몇 년 전에 베스트셀러 1위가 됐던 책이 새롭게 주목받는다는 건 꽤 드문 일이다.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는 소식에 작품에 대한 관심도가 부쩍 높아진 탓으로 풀이된다.
<엄마를 부탁해>처럼 폭발적인 반향은 아닐지라도, 소설 순위에서 오랜전에 나온 책이 힘을 내고 있는 것도 눈에 띈다. 모리무라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이 그 주인공이다. 일본에서 1970년대에 나온 <인간의 증명>은 2003년에 국내에서 출간된 바 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추리소설의 구매자는 한정적이었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을 책은 아니었다. 추리소설의 독자들을 위한 책이었다.
<인간의 증명>이 2011년에 새롭게 조명 받을 기회를 얻게 된 건 MBC 드라마 <로열 패밀리>의 원작소설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물론 원작소설이라고 해서 베스트셀러에 진입하는 건 아니다.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소설이라고 알려진 많은 책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진 건 익히 들어왔고 자주 봐온 일이다. 그런 사실은 말 그대로 하나의 기회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 책들 사이에서, 비교적 과거의 책인 <인간의 증명>이 인기를 얻은 이유는 뭘까?
도쿄 중심부에 있는 호텔의 호화 레스토랑에서 흑인의 시체가 발견된다. 엘리베이터에 있을 때만 해도 그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누구도 이 남자의 가슴팍에 칼이 꽂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터였다. 시체의 행색은 허름했다. 이런 호화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출입객의 모습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의문을 가진다. '이 남자는 누구에게 살해된 것인가'라는 의문만큼이나 '왜 이곳에서 죽었는가'가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든다.
경찰은 호텔을 샅샅이 조사하지만 용의자는커녕 단서조차 찾지 못한다. 이 남자가 왜 이곳에 왔는지조차 짐작하지 못해 미국의 형사들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그로 인해 얻는 정보도 빈약하기만 하다. 그 때문인지 경찰들은 점점 사건을 포기하는 분위기다. 단 한 사람, 무네스에 형사만 변함없이 사건을 조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