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중심부였던 서울 광화문 거리.
김종성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차범근이 뛸 수 있나 차범근·허정무는 한국 축구의 영웅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대표선수가 되어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책임질 수는 없다. 2014년에는 거기에 맞는 연령대의 선수들이 따로 있다. 적시에 이루어지는 대표팀 세대교체가 월드컵 성적을 좌우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축구대표팀뿐만 아니라 '정치대표팀' 즉 지배층에게도 세대교체는 매우 필수적이다. 1986년 멕시코월드컵에 적합한 선수들을 데리고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 나갈 수 없듯이, 이미 노쇠해진 지배층을 데리고 새로운 시대에 적응할 수는 없다. 이를 증명하는 적절한 사례 세 가지가 있다.
조선왕조와 관련하여 이 땅에서는 총 세 차례의 '월드컵' 즉 '격변'이 있었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일어선 14세기 후반, 조선이 임진왜란으로 일대 고비를 겪은 16세기 후반, 조선이 온 사방으로부터 얻어맞은 19세기 후반에 그 같은 격변이 있었다.
14세기 후반과 19세기 후반의 월드컵은 기존 왕조의 멸망을 초래했고, 16세기 후반의 월드컵은 그런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양쪽의 차이점을 규명할 수 있는 잣대가 있다. 그것은 '대표팀 세대교체'가 적시에 이루어졌느냐 여부다.
슈퍼파워 몽골제국의 약체화 조짐이 뚜렷해진 14세기 중반부터 동아시아는 격변의 소용돌이에 빠졌다. 1355년에는 백련교도와 미륵교도들이 중심이 된 홍건적이 몽골제국에 대항하여 일어섰고, 1363년에는 백련파의 주원장이 미륵파의 진우량을 꺾고 명나라 건국의 기틀을 확립한 뒤 1368년에 몽골제국을 북쪽으로 내쫓고 중국대륙을 장악했다.
기존 대표팀을 갖고는 이런 격변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한 공민왕은 즉위(1351년) 몇 년 뒤부터 대표팀 세대교체를 본격 단행했다. 공민왕에 의해 수혈된 '젊은 피'는 이성계 군단과 신진사대부 그룹이었다.
사대부란 유교적 교양을 갖춘 관료를 말한다. 이런 관료들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공민왕이 발탁한 사대부들은 이전의 사대부들과 명확히 구별된다는 점에서 신진사대부라 불릴 만했다. 중소 규모의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들이 다수를 점했다는 점, 인맥이 아닌 실력(과거시험 합격)을 통해 중앙정계에 진입했다는 점, 사회 시스템의 혁신을 갈망했다는 점 등에서 그러하다. 이들은 공민왕의 집중 지원 속에 이성계 군단과 더불어 새로운 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런데 고려왕조는 이들을 수용할 만한, 아니 제어할 만한 역량이 없었다. 새로운 세력을 수용하기에는 너무 늙어 버렸던 것이다. 고려 정부군이 이성계 군단을 제어하지 못한 사실, 신진사대부의 상당수가 고려왕실보다는 이성계를 지지한 사실 등에서 그 점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성경 마태복음 9장 17절에서 말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고려왕조는 이성계 군단과 신진사대부라는 '새 포도주'를 담기에는 '너무 낡은 가죽 부대'였다. 새로운 세력을 끌어안기에는 시스템이 너무 낡아 버렸던 것이다. 게다가 공민왕 때의 세대교체는 이미 '때늦은 일'이었다. 동아시아가 격변에 빠져들기 직전에 세대교체를 단행했으니, 다시 말해 월드컵 개막 직전에 세대교체를 단행했으니, 그것은 너무 때늦은 일이었다. 새로운 피의 수혈이 왕조를 살리기보다는 도리어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