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 묘량중앙초등학교 아이들학생 수 20명도 안 되는 폐교위기의 시골마을 초등학교이지만, 근래 '작은 행복학교 만들기'를 시도하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강위원
해가 바뀔 무렵 지역 신문사에서 전화가 왔다. 신년에 의례적으로 하는 띠동갑 별 새해 소망 인터뷰를 하고 싶은데, 초등학생 열두 살짜리 학생을 섭외해 달라는 거다. 무조건 된다 했다. 초등학생 때 신문에 인터뷰가 실린다는데, 그게 얼마나 어린 아이들에게 오래갈 추억이겠는가. 그것도 저 폐교 위기의 시골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말이다. 찾다 없으면 한 명 대타라도 만들어 인터뷰를 시키라고 공동체 식구들에게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며칠 뒤 신문을 펼쳐들고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가슴이 먹먹해지고 말았다. 몇 달 전 그 아이, '피아노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는 그 여자 아이의 얼굴이 떡 하니 있는 게 아닌가.
"엄마가 안 계신다. 아빠는 서울에서 돈을 버시고 시골에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다. 새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피아노를 배우는 거다. 피아노 학원을 다닐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열심히 배워서 연말에 아빠와 할머니에게 멋진 피아노 연주를 해 주는 게 소원이다."그랬었다. 그 아이는 한 달 8만원 돈 하는 피아노 학원비를 댈 수 없는 할머니 밑에서 '피아노가 세상에서 가장 싫다'며 속울음하고 살았던 것이다. 먼저 포기하고 절망하고 스스로 위로하며 혼자 감내하고 살았던 것이다. 버스비까지 아껴가며 그 먼 길 왕래했던 것이다.
남들 다 타고 읍내 나가는 그 피아노학원 차를 보면서 그 아이는 수 년 동안 얼마나 많이 서러웠을 것인가.
우리 공동체 식구들 모두 한동안 침묵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우리는 폐교위기의 작은 시골학교 살리기 운동을 하면서 어찌 이런 속사정도 몰랐다는 것인가. 당장 학원비를 지원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그조차 또 다른 낙인이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