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이야말로 "공부 좀 더하라"

등록 2011.04.16 16:18수정 2011.04.16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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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EU FTA' 외통위 소위를 진행하던 중, 김종훈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이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공부 좀 더 하라!"고 큰 소리를 쳤다가 도마 위에 올랐다. 강기갑 의원은 곧바로 "공부 잘해서 협정문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냐?"고 받아쳤고, 머쓱해진 김 본부장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났음을 감추지 않고 웃으며 회의장을 떠났다.

 

결국, '물리력 반대'를 약속했던 소장파 홍정욱 한나라당 의원이 기권을 함으로써 '한-EU FTA' 외통위 소위는 부결되었으며, 4월 국회 처리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일단, 이번 사태로 김 본부장은 도마 위에 올랐고, 홍정욱 의원은 스타덤에 올랐으며, 강기갑 의원은 특유의 버럭 고함으로 국민의 속을 시원하게 긁어주었다.

 

강기갑 의원에게 한 말은 국민에게 한 말과 다르지 않다

 

김 본부장은 연세대학교를 졸업했으며, 2006년에는 자랑스러운 연세대학교 상경인상도 수상했다. 이른바 SKY 출신이니 제법 공부 좀 했다는 축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 발언을 보면서 '공부'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고, 김 본부장이야말로 "공부 좀 더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그런 점에서 국민의 입장에서는 국회의원들이 잘못할 때 "똑바로 하라!"고 다그치기도 하고, 비판해도 당연한 요구겠지만,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공무원인 행정관료(그 역시도 국민의 심부름꾼이다)가 국민을 대신해서 '한-EU FTA'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는 국회의원에게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공부 좀 더 하시라"고 하는 것은 제대로 된 인생 공부는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싶은 것이다. 그것은 강기갑 의원 개인에게 한 말이 아니라 국민에게 한 말이나 다름이 없다.

 

영어공부 제대로 해서 번역이나 제대로 해주시길 바란다

 

나는 그 말이 "공부도 못한 것들이(소위 SKY도 못나온 것들이) 뭔 말이 그리도 많아. 잠자코 있지?" 하는 말로 들렸다. 공부도 못하는 것들이 '한-EU FTA'를 반대하는 것이라는 소리로 들렸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소위 번역의 오류 정도가 아니라 법조항의 불일치 문제까지 들어있는 심각한 협정문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아니할 수 없는 상황이다.

 

번역된 협정문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그리하여 영문에 의거하여 재번역을 하고 그 속에 숨은 뜻을 찾아야 한다면 그것이 어찌 자주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엄연히 우리의 언어를 가지고 있는데, 애매모호한 문장과 불일치되는 해석을 내놓고 중요한 내용은 영문으로 보시라는 것이 소위 공부하신 분들의 일하는 방식인가? 그러니까, 영어를 술술 읽고 해석하지 못하는 이들은 '한-EU FTA' 협정문 같은 것은 읽을 생각도 말라는 것인가?

 

국회의원에게 이렇게 오만한데, 일개 소시민에게는?

 

이명박 정권은 인수위부터 소위 영어몰입교육을 해야 한다며 '오렌지'가 아니라 '오륀지'라며 저급 개그에도 못 미치는 쇼를 하기도 했다. 사교육을 대폭적으로 줄여 가계 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하더니만, 영어몰입교육으로 사교육시장을 춤추게 했다.

 

그 결과가 오늘의 카이스트로 표면화 된 것이다. 그러더니만 정작, 나라의 미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협정문에서 번역오류가 아닌 불일치가 수도 없이 발견되면서 그들의 영어실력이 백주대낮에 들통이 났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공부 좀 하라!"고 다그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 대표 격인 국회의원에게도 그렇게 오만할진데 국민에게는 어떨까? 한 개인에게는 어떤 식으로 작용이 될까 생각하니 오싹한 기분이 든다. 이 말은 "젊은 것들이 뭘 안다고 까불어?" 하는 말과 아주 잘 통하는 말이다.

 

그런 말은 미숙함의 발로이다

 

나에게도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이 있다.

 

대학시절 휴학을 하고 일 년 뒤에 복학한 친한 친구에게 시국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공부 좀 더 하고 와서 얘기하자"고 했다. 철이 덜 들었을 때의 이야기다. 모든 학문이 통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닫고 나서야, 내가 읽은 책을 읽지 않았다고 공부를 안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에야 그 친구가 심한 상처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에는 그렇게 애기를 해줘야 그 친구가 열심히 공부할 것이라고 스스로 합리화시켰지만, 돌아보니 미숙하고 철없는 젊은 시절의 실수였던 것이다. 그 이후로는 그런 이야기를 못한다. 해도 해도 끝도 없는 것이 공부지만, 그것이 단지 책만 파는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이 소위 SKY대를 나왔고, 젊은 나이에(?) 이런저런 감투를 썼으니 제법 공부 좀 했다고 자만했는가 싶다. 그러나 한 나라의 행정 관료가 되었으니 자기 분야에서 임명장을 준 대통령의 뜻을 헤아리는 일에만 열중할 것이 아니라, 진정 국민과 나라를 위한 것이 무엇인지 공부하고, 그것을 위해 골몰하는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이런 현상의 배후는 없나?

 

이런 현상들은 MB정권 출범 이후 적지 않게 일어났으며, 최근에는 아예 막가파식의 발언으로 국민을 우롱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이른바 막말, 거짓말, 뒤집기, 밀어붙이기 등등, 부패한 정책과 제도를 만들어 아무런 소통 없이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이는 MB식 정책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오로지 그런 이들만 살아남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아예 철면피를 깔고 이전에 살아왔던 모든 삶의 가치관까지도 과감하게 버리는 이들도 허다하다.

 

그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가 4대강 사업 홍보부본부장 차윤정씨다. '잡냄새 없어진 매운탕, 우리도 놀랐다'는 '4대강 살리기 행복 4강' 홈페이지에 올라온 글 말미에는 감격에 겨워 이렇게 말한다.

 

"강바닥이 말 그대로 바닥으로 가라앉아 넉넉해진 강의 품, 완만하게 되살아난 수로변, 맑아진 물, 새로워진 강의 모습은 비단 건강한 수생태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기억 속의 넉넉하고 아름다운 강 풍경이다. 올 봄에 태어날 강의 생명들은 새로운 강에서 어떤 설렘을 가질 수 있을까.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도 설레는 봄이다."

 

'신갈나무 투쟁기'로 잘 알려졌던 차윤정씨의 4대강을 죽이는 사업을 예찬하는 글을 보면서 씁쓸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오로지 MB정권 친위대만 살아남는 더러운 세상, 그 세상이 영원하길 바라는 그들에게 나는 "공부 좀 더하라!"고 말하고 싶다. 당신들이 말하는 그 공부 말고, 인생 공부 말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대한 공부,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에 대한 공부, 그런 공부 좀 더하라고 말하고 싶다.

2011.04.16 16:18ⓒ 2011 OhmyNews
#김종훈 #강기갑 #차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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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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