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속노동조합 쌍용차지부 창원지회는 지난 12월 1일부터 쌍용자동차 창원공장 앞에 천막을 치고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다.
윤성효
해고, 무급휴직, 희망퇴직의 형태로 회사에서 떠나게 된 2646명의 쌍용차 노동자들은 생계가 어려워졌고, 빚더미에 올라앉았으며, 가족과의 갈등을 겪었다. 생존을 위해 회사와 싸워야 했지만 공권력으로부터 진압을 당했고 범죄자가 됐다.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내몰리는 현실, 게다가 치료까지 받아야 한다는 사실은 이들에게 충분히 비참했다.
정혜신씨가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당신들이 겪고 있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알리는 것이었다.
"이 사람들이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은 일반 우울증과는 달라요. 전쟁터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거나, 강간을 당하는 등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아무리 정신적으로 굳건한 사람도 예외 없이 망가질 수밖에 없는 병이죠. 당신들이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명백히 가해자가 있는 병이라는 개념부터 설명하는 것이 중요했어요."'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게 만드는 궁극적인 원인은 2차 외상 후 스트레스. 1차 스트레스에서 얻은 상처를 힘들게 꺼내보였을 때 주위에서 보이는 부정적인 반응은 결정적으로 사람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의 증상은 상황이 종결돼도 점점 퍼져나간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경우 "해고됐다고 죽느냐"는 냉소적인 시선과 '폭력적인 파업'의 낙인이 계속해서 상처 위에 상처를 내고 있는 셈이다.
아프지만 상처와 직면하는 것이 치유의 길 지금까지 노동자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회사 정문, 보신각, 국회 앞에서 계속 시위하고 있지만 바로 어제 일을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정혜신씨는 노동자들에게 일 주일 중 하루는 가족과 시간을 보낼 것을 권유했다. 가족과의 하루는 자신들의 삶에 시간을 할애해 현실을 오롯이 인식하게 만드는 치료 방법이다.
"억울한 일을 겪은 사람들은 사과를 받는 과정에서 치유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투쟁이라는 정체성은 존중해 줘야 해요. 다만 투쟁하는 날 중 하루라도 자신의 삶을 입체적으로 보라는 것이죠. 나와 내 가족이 지금 어떤 상태인지를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은 수 년이 지나도 고통 받았던 시점에 머물러 있어요. 레코드판이 튀듯이 그 부분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 거죠."아픈 현실에 직면해야 하는 것은 웬만큼 심장이 단단해진 어른들만의 몫이 아니다. 고인이 된 한 조합원의 중학생 딸(15)과 고등학생 아들(18)은 아버지를 잃기 전 어머니까지 떠나보냈다.
이들에게 손을 내민 것은 가수 박혜경씨(37). 그는 지난 3월 초부터 아이들과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상처를 지닌 아이들에게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무슨 말은 하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고 한다. 정혜신씨는 남매가 장례식장에서 씩 웃더라는 이야기를 해주면서, 이 같은 행동은 "현실을 알면서도 부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