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행정 관료의 오만

[주장]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국민에게 사과해야

등록 2011.04.15 15:46수정 2011.04.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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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과 현상을 보는 눈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가 있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주어진 조건과 환경이 세계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그것에 기초해서 여러 갈래의 시각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가급적 상대방을 고려하면서 대화하고 문제를 풀어 나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지역사회와 나아가 국익 차원으로 확대될 때 더 심각한 대립 양상을 보일 수 있다. 국가를 구성하고 있는 국민이 다양한 계층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가능한 한 대화와 타협으로 공통분모를 찾아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늘(4월 15일) 인터넷 뉴스를 잠깐 보다가 깜짝 놀랐다. 한 행정 관료가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야당 의원에게 화를 내며 공부 좀 하라고 질책하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 당사자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고 있는 김종훈 본부장과 민노당 소속 강기갑 의원이다. 외교 문서의 기본 조건조차 구비하지 못한 법안(무수한 번역 상의 오류)을 외통위 법안심의소위에서 통과시키려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이 법안이 소위에서 부결되고 나서 나온 행동이었다.

 

강기갑 의원은 다 알다시피 농촌 출신으로 농민운동을 한 뒤 민노당으로 국회에 입성한 사람이다. 어떤 의원보다도 농업 문제에 대해 깊은 이해와 많은 활동을 해 온 국회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그가 공부를 얼마나 많이 하고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잘 모른다. 어쩌면 대학을 못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는 농촌 문제에 대한 것만은 그 분야 박사학위를 갖고 있는 사람보다 더 정확하고 넓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지식이 진정 참된 지식이 되기 위해서는 그 분야 구성원들을 대변해 주고 이익을 찾아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강 의원은 많은 내공과 결과를 갖고 있는 사람이다.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하는 경남 지역에서 당선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것의 반영일 터이다.

 

강 의원에게 공부 좀 하라고 일갈한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에 대해 검색을 해 보았다. 개인에 대한 기록이지만 인터넷에 공개된 내용이니까 몇 가지 밝히면, 1952년생으로 대구 출신이고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 뒤 제8회 외무고등고시에 합격해서 외무부에 입성했고, 현재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을 맡고 있다. 아마 차관급은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미국을 비롯해 여러 나라와 FTA 협정을 맺는데 책임을 맡아 진행시켜 온 사람이다. 다양한 요구를 수렴하며 일을 처리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려움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민의의 전당이자 입법부인 국회의사당에 와서 자기 성에 차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버럭 화를 내며 공부 좀 하라고 국회의원에게 일갈한 것은 정도를 넘어도 한참 넘어선 언행이다. 행정부 인사가 지나치게 굽신거리며 법안 처리를 읍소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마치 아랫것을 나무라듯 국회의원을 감정적으로 질타하는 것은 너무나 짧은 생각이다.

 

국가의 일이라는 것이 감정으로 대응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꼬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우리는 자주 경험하지 않았는가? 지금의 행정부가 교만하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대통령에서부터 각부 국장급에 이르기까지 입법부를 너무 만만하게 본다고 말들이 많다. 행정부가 다시 한 번 대오각성을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국정 장악력이 뛰어난 대통령이라 해도 이제 임기가 일년 하고 조금 더 남았다. 지금의 행정부는 다음 정부에 무리 없이 업무를 어떻게 잘 이양할 것인가를 준비해야 할 때이다.

 

그런 점에서 한나라당 소속 홍정욱 의원의 결단이 돋보인다. 그는 표결에 기권함으로써 FTA 법안이 부결되는데 일정 부분 기여했다. 자기 당의 당론을 따르지 않은 것이다. 홍 의원은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고 무리하게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면 기권하겠다고 공언해왔다고 한다. 당 소속이기 이전에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으로서 용기 있는 처신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젊은 의원답다는 생각이 든다. 법안이라는 것은 한 번 법으로 정해지고 나면 싫든 좋든 따라야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국민 개개인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국가 이익이 걸려 있는 FTA 법안은 더욱 깊이 있는 여론 수렴 과정이 필요하다.

 

강기갑 의원에게 공부 좀 하라며 화를 내고 사라진 김종훈 본부장의 앞으로의 보행이 주목된다. 그가 막말에 가까운 말을 퍼붓고 사과도 하지 않은 채 회의장을 빠져 나갈 때는 생각한 것이 없지 않을 것이다. FTA 협정문 백 여 개가 훨씬 넘는 번역의 오류는 통상교섭본부장과 관계자들이 자기 역할을 다 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공부 잘 한 사람들이 이런 오류투성이의 번역을 기초로 법안을 만들었다면, 강기갑 의원의 말이 우리에게 더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당신은 공부를 얼마나 잘 했기에 만신창이의 법안을 만들어 소위에 제출한 거야!"

2011.04.15 15:46 ⓒ 2011 OhmyNews
#FTA법안 #김종훈 #강기갑 #홍정욱 #법안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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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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