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겉그림
오마이북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김혜원 저, 오마이북 펴냄)는 <오마이뉴스> 김혜원 시민기자가 독거노인 17분을 취재, 연재한 기사(2009.11.13~12.31) 중 12꼭지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첫 주인공은 박복례 할머니. 할머니는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 허름한 주택가에 자리한 낡은 주택의 뒷방에서 홀로 5년째 살고 있는데, 요즘 걱정이 많다. 재개발 때문에 조만간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할머니가 가진 돈으로 방을 얻기가 쉬울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가족 하나 없이 50년 가까이 혼자 살고 있는 독거노인이다. 그런데 정부로부터 기초생계비조차 지원받지 못하는지라 한 복지재단이 후원해주는 쌀과 김치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다. 50년 전에 이혼한 남편이 버젓하게 남편으로, 전처의 자식들이 할머니 호적에 실려 있는지라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휴우, 이젠 계단 오르내리기도 힘들어. 내가 몸이 아프고 힘들어서 (살림을)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도우미 아줌마(정부 파견 독거노인 생활지도사)가 도와줘서 이만큼이나 하고 사는 거야. 입만 살았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어… 나 같은 늙은이 나라에서도 나 몰라라 하는데… 굶어 죽은들 알겠어…사람 집엔 사람이 드나들어야 사는 것 같지. 늙은이 잊지 말고 자주 찾아와"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중에서할머니는 몇 년 전 낙상으로 허리를 크게 다쳐 돌아눕는 것조차 고통스럽단다.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생활을 전혀 할 수 없는지라 도우미 아줌마의 주1회 방문이 턱없이 모자랄 정도다. 그런데 이런 할머니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사람의 정이다. 거동조차 힘들만큼 몸이 불편해 밖에 쉽게 나갈 수 없어 사람이 더욱 그리울 수밖에 없다.
박복례 할머니의 이야기는 그동안 이따금씩 보도를 통해 접했던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떠올라 참 쓰리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이야기 끝에 취재 이후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오마이뉴스> 기사를 통해 할머니의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후 할머니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었고, 덕분에 병원비와 기초생활비를 도움 받을 수 있게 되었다니 말이다.
하루에 두세 꼭지씩, 쉽게 읽지 못한... 가슴 쓰린 어르신들 이야기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인, 이혼의 충격으로 실명한 아들과 청소년기의 두 손자를 먹여 살리고자 하루 종일 골목을 누비며 폐지와 빈병을 줍고 살아가는 성말용 할머니. 그리고 몇 년 전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얻게 된 관절염과 허리통증에 대한 치료는 커녕 공공근로라도 해서 병든 아들과 손자를 먹여 살려야만 하는 주삼순 할머니의 사정은 더욱 딱하다.
이분들뿐이랴. 사실 책을 통해 만나는 어르신들의 사정이 모두 딱한지라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는 쉽게 읽지 못하고 분분한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며 읽은 책이다.
그럼에도 이 두 분의 이야기가 자꾸 밟히는 것은 당신 몸 건사하기도 힘든 연세에 딸린 가족들까지 먹여 살려야만 하는 절박한 삶의 무게가 오죽할 것이며, 언젠가는 건강하지 못한 자식과 어린 손자를 두고 가야만 하는 엄연한 사실 때문에 한순간인들 상심에서 벗어날 수 있으랴 싶기 때문이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왔던 2009년 겨울. 서울에 살고 계신 열두 분의 독거노인을 만났다. 대낮에도 햇볕 한 조각이 허락되지 않는 손바닥만한 지하 월세 방에서 이불 한 채와 그릇 몇 개가 전부인 초라한 살림을 꾸리며 살아가는 노인들. 습하고 어두운 반지하방에서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의 삶을 외로움과 가난, 질병을 벗 삼아 살아가는 독거노인들의 삶을 책으로 묶어낸 이유는 측은한 삶을 드러내 값싼 동정을 이끌어내자는 것이 아니었다. 사는 모습과 생김새는 달라도 여든을 바라보는 우리의 부모와 너무나도 닮아 있는 그분들 삶에 대한 연민과 존경 때문이었다. 또한 지나온 그분들의 삶을 통해 독거노인이 된 지금의 외로운 삶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생의 어디쯤에서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중에서책은 아무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독거노인 한분 한분을 만나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사시는지, 어떻게 독거노인이 되었는지, 가장 힘든 것은 무엇이며 꼭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아오셨는지 등을 인터뷰한 것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는지라 책을 읽자 작정하고 5~6시간 읽으면 거의 읽을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럼에도 쉽게 넘겨 읽지 못해 하루는 두 꼭지, 또 하루는 세 꼭지, 어떤 날은 그동안 책을 통해 만난 어르신의 삶이 불현듯 떠올라 하던 일을 멈추고 서성거리다가 한 꼭지, 이렇게 며칠 동안 잘라 읽어야만 했다. 어떤 분의 이야기는 더 이상 읽지 못하고 놓기를 반복하기도 했다.
책을 통해 만나는 독거노인들의 쓸쓸하고 외롭고 남루한 일상들이, 부양할 능력이 전혀 없는 자식들 때문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해 병든 몸이지만 병원비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폐지 등을 주워 간신히 생활비를 벌며 살아가는 노인들의 처지가, 나이가 들수록 따뜻한 것을 원하는 우리 몸의 당연한 요구조차 포기한 채 살아가는 노인들의 현실이 너무나 처참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동안 유독 추웠던 지난 겨울 폐지를 주으시며 거리를 헤매던 내 가까운 이웃 할아버지와 자주 이용하는 시장 언저리에서 이제는 거의 쓸모가 없어진 옷핀이며 지퍼 같은 것들을 펼쳐놓고 팔던, 이제는 보이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기 때문이다. '내게 필요 없는 것들이라고 하나 팔아 달라 내미시던 손을 왜 외면하고 말았던가'하는 후회와 함께.
"복지혜택 받는 노인들, 공무원에게 머리 숙이는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