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차전놀이 남교사가 적은 학교에서 차전놀이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송지호
얼마 전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초등학교 여교사 비율이 91%에 이른다는 기사가 나왔다. 지금껏 절대 다수였던 내가 교직에서 소수인 남 교사가 된 지도 어느새 10년이 지나고 있다. 처음에 교직에 나왔을 때에 비해 서서히 남 교사의 수가 줄어들고 있음을 느낀다. 남교사가 천연기념물이라는 소리도 이젠 식상해서 쓰지 않는다. 당연한 소리가 되어 버리니 농담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다. 실제로 학교에서는 보호하고 관리해야 하는 희귀종 대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매년 2월 중순이 되어 선생님들의 전입, 전보 발령 명단이 발표되면 남교사가 오는지 안 오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가끔 남자가 온다고 해서 성대한 잔치라도 벌일 듯 축제분위기가 연출되다가 성함만 남자같은 분이라 학교 전체가 정적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 분들은 괜히 미안한 마음까지 안고 새로운 학교에 출근하게 된다.
반대로 여성스러운 이름으로 남고 시절 놀림감의 주인공이었을 법한 남자 선생님은 예상을 뒤엎는 반전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남자 선생님이 학교에 새로 부임하면 교장 선생님이 '능력자'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이런 몇몇 '능력자' 교장선생님이 계신 학교를 제외하고는 같은 학년에 남자는 혼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렇게 '나홀로' 남 선생님일 경우 부딪히는 일들을 몇 가지만 말해 보면 이렇다.
하나, 남자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일들인데도 지나친 과찬을 받는 경우가 빈번한데 진짜로 잘해서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건지 남자니까 무조건 칭찬을 하시는 건지 구분이 잘 안 될 때가 잦다.
둘, 여자선생님 6~7분의 치열한 설전 속에 혼자 앉아있는 모습은 초등학교에 주로 있는 세종대왕 동상과 다를 게 없다. 공적인 협의회에서는 그나마 '내가 말을 잊지 않았어'라는 존재감을 느끼지만, 학년별 친목을 위한 자리에서 남교사는 자연스럽게 묵언수행의 경지에 들어서게 된다.
결혼을 안 한 후배 여선생님들이 현빈같은 스타일의 남자가 왜 자기 주변에 없느냐고 이야기할 때 주변에 있으면 상처만 받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지만, 말문을 열고 묵언수행을 어기는 순간 친목은 반목이 되며 남교사는 공공의 적으로 장렬히 전사하게 된다.
셋, 결혼을 아직 못하고 있지만, 어느새 엽산이 기형아 예방을 위해 반드시 섭취해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고, 영어유치원은 어디가 좋으며 한달에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또 태권도학원은 어디가 괜찮은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이 얼마나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며 교육에 끊임없는 관심을 기울이는지도 절실히 느낀다.
이처럼, '나홀로' 남자로 일하다 보면 남자들이 알기 어려운 것을 많이 알아가긴 하지만, 어딘지 모를 허전함과 외로움이 느껴진다. 가끔은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한편 운동회나 고학년 생활지도 등 남교사로서의 업무가 많아 힘들어 한 적은 별로 없다. 최근엔 남교사가 적다보니 여교사들도 남자가 해야 할 일과 여자가 해야 할 일을 크게 구분하지 않는 분위기다.
공부만 한 교사 아닌 안목이 넓은 교사가 많아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