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안개가 조금 걷히기 시작하자 우리는 서둘러 바닷가를 찾았다. 좌우로 탁 트인 광경이었지만, 안개 탓에 저 멀리 수평선은 선명하게 보이질 않았다. 대신 모래밭은 밀물에 고인 바닷물로 축축이 젖은 형색이었지만, 곱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하얗게 모래 언덕을 이루기엔 너무 가벼울 정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로 이곳에서 3년 전, 기름유출사고가 있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 모두가 이곳 주민과 130만 자원 봉사자들의 눈물겨운 봉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고즈넉한 바다와 달리 매섭게 휘몰아치는 바람을 뒤로한 채 우리는 발걸음을 서둘러 돌렸다. 이번 가족 나들이의 애초 목적지는 국내 최대 1만 2천 평으로 알려진 팜카밀레 허브농원을 찾기 위함이었다. 전날 예상치 못한 교통량으로 다음날로 미뤄야만 했던 우리는 서둘러 점심을 해결한 후 팜카밀레 허브농원을 찾아갔다. 팜카밀레는 몽산포해수욕장과 만리포해수욕장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도착한 농원 입구엔 가족 혹은 연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고 줄을 서 있었다. 모두 드넓은 이곳 농원에서 봄의 향연을 즐기리라는 각오로 온 듯했다. 하지만, 들어서기가 무섭게 이곳저곳에서는 우리를 비롯해 한숨과 탄성 소리가 흘러나왔다.
꽃이라곤 동네 화분에서도 접할만한 두세 가지가 전부였고, 앙상한 나뭇가지와 붉은 토양만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이 토네이도처럼 온 몸을 감싸는듯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꽃들을 찾아 우리를 비롯한 많은 관광객이 발걸음을 재촉하며 움직였다. 하지만, 어디를 가도 눈에 보이는 거라곤 앙상한 나뭇가지와 울타리를 따라 혹은 돌담 아래 쑥이 전부였다.
입장료가 아까워 속상해하고 있을 즈음, 우리 가족 바로 앞에 가던 일행들 또한 같은 마음인지, 일행 중 한 명이 말을 던진다.
"여기 입장료 얼마야?"
"3천 원."
다분히 낸 입장료가 아깝다는 눈치들이다. 유모차에 어린아이를 태우고 들어온 가족들은 언덕길과 나무 계단을 건너기 위해 공중곡예를 하다시피 했다. 결국, 우리를 포함한 유모차 일행들은 더는 찾아봐야 없을, 꽃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이쯤에서 포기했다.
거기에 더해, 출구를 바로 앞에 두고 기자는 쑥을 캐기 시작했다. 입장료가 아까워서라도 울타리를 따라 돋아난 쑥이라도 캐가야 할 듯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애들 아빠는 "나는 일하러 왔고, 너는 쑥 캐러 온 거 같다."라며 혀를 찬다.
서울 한강 여의도 봄꽃축제를 비롯해 전국 곳곳에서 꽃축제 행사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꽃축제 일정이 잡혀 있다고 무작정 떠나서는 안 될 것이다. 사전에 개화시기를 알아보는 것도 좋겠지만, 보다 정확한 행사 정보를 원한다면 축제가 이뤄지는 지역 관계 부서에 문의해 볼 필요가 있다.
기자가 본 이곳 충남은 아직 바람이 잦고, 일교차가 큰 탓에 꽃들이 피어나기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못내 아쉬운 마음으로 집으로 향하는 길, 우리 가족은 농원에서 35분 거리에 있는 부석사에 들렀다. 입장료 없이 들어선 부석사가 차라리 볼거리도 훨씬 풍성해 보인다. 바람에 울려 퍼지는 타종 소리는 은은하기 그지 없고, 풀숲 여기저기 작고 예쁜 꽃들도 피어났다. 꽃가지 수로 따지면, 농원보다 훨씬 많다.
다시 차를 타고 지나오는 길에, 천문기상과학관(서산 류방택)에 들렸다. 이곳 또한 무료관람으로 볼거리도 훨씬 풍성하다. 우선, 안내 입구 좌측으로는 방문 기념으로 무료로 촬영해주는 포토존을 갖췄다. 안으로 들어서면, 여러 가지 빔프로젝트와 스크린을 이용한 천문 현상 및 특수효과가 가미된 동영상을 관람할 수 있다. 보조관측실에서는 여러 대의 천체 망원경을 통해 낮에는 태양의 흑점과 홍염을 관측할 수 있다. 이 모두 우리 가족의 아쉬운 여정을 달래기로도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