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 사복체포조 '백골단'이 시위에 참가한 학생들을 무차별적으로 연행하고 있다.
최윤석
- 그런 양심선언이 있으면 내부에서도 전의경 제도에 대한 비판적인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누군가가 나서서 발언한다면 다른 구성원들도 용기를 얻어 동참할 수도 있겠고요. "그럴 것 같죠? 하지만 군대란 조직은 내부적으로 자신의 고민에 대한 소통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곳입니다. 그런 갈등이 격화됐을 때, 제가 있던 전경 조직을 예로 들면 내부적 분위기는 굉장히 (문제제기를 한 사람에게) 적대적으로 변해요. 이건 생리적인 문제거든요. 시위가 많아지면 부대에도 못 들어가고, 잠도 못 자고, 길바닥에서 잠들고, 밥도 못 먹고, 이런 상황이란 말이죠. 그런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 분노한단 말이에요.
그런데 어디다 분노하느냐, 나를 힘들게 하는 직접적 대상이 되겠죠. 그게 시위대나 학생들이잖아요. 이들에 대한 분노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거죠. '우리가 화내야 할 상대는 시위대가 아니고 이런 문제를 야기한 자들, 그리고 사태를 무마하기 위해 우리를 내모는 자들이다'라는 식의 인식을 할 수 있는 경우는 사실 많지 않아요. 그런 고민들은 개인적으로 침잠되는 경우가 많죠."
- 병역을 입대 전에 거부하는 것과 복무 중에 거부하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더 참으면 제대할 수 있어'하는 유혹이나 고민도 분명 많았을 것 같아요. "저에겐 죽고 사는 문제였어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견디기 어려웠거든요. 실제로 많은 군인들이 죽잖아요. 그런 고민을 하면서 이대로 끝내선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때 양심선언이라는 저항, 선언의 형태를 알게 되었고요. 제가 부대 내에서 일기를 쭉 썼거든요. 그게 이런저런 고민들을 쏟아내는 창구 같은 역할을 했는데, 그때 쓴 일기의 마지막쯤에 그런 얘기가 있어요. "내가 도망갈 수 있는 탈출구들을 봉쇄해야 내가 살 수 있다."
'좀 견디면 제대할 수 있다는 생각, 그런 일상적인 삶의 부분들을 버려야 내가 (양심선언을) 선택할 수 있을 거다. 지금이 그것을 버려야 할 때다'하는 결심을 하게 된 거죠. 그런데 그런 결심은 지금도 해야 해요."
겨우 4주 교육받고 국민의 '통제자'가 되다니- 2008년 6월, 전경에서 육군으로의 재입대를 요구한 이계덕씨가 국방부에 접수한 민원 내용을 읽어봤습니다. 부대 내 가혹행위와 구타 외에도 경찰관의 빨래나 세차를 해주거나 심지어 경찰관들이 술을 마실 때 새벽에 일어나 술안주를 만들어야 했다는 등 경찰관의 사적 편의와 시중을 위해 전의경들이 동원되고 있는 현실을 지적했는데요. "그래서 경찰이 전의경 제도를 안 없앨걸요? 그렇게 사병이나 종처럼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가 없지요. '소대장 전령'이란 게 있어요. 지금도 그런 표현을 쓰는지는 모르겠는데, 그게 소대장의 일거수일투족을 챙겨주는 거예요. 군화 닦아주고, 옷 다려주는 건 기본이죠. 별별 일들을 다 해요. 이렇게 하루에 18시간 노동시킬 수 있는 조직이 어디 있어요.
얼마 전에 인권위에서 토론을 하더라고요. 거기서 경찰청 관계자가 나와 그렇게 얘기합디다. "치안 공백이 국민들에게 부담되기 때문에 (전의경 제도를) 없앨 수 없다." 국민들을 위해서라면 빨리 없애야죠. 왜냐면 치안도 국가가 국민에게 제공하는 하나의 서비스잖아요. 국가의 의무이기도 하고.
그런데 전의경들이 경찰 소양 교육을 얼마나 받습니까? 2주에서 4주 정도 받습니다. 경찰들이 6개월, 1년씩 교육받고 나와서도 문제 많이 일으키잖습니까? 군대랑은 또 다른 거예요, 이 조직은. 매일 국민들을 상대하는 거란 말예요. 경찰이 봉사자만은 아니잖아요. 정확히 말하면 봉사자란 측면과 통제자란 측면을 같이 갖고 있는 거지요.
20대 초반 젊은이들이 국민들을 통제하는 일선에 나와 있는 겁니다. 또 자신들을 경찰이라 생각하지도 않고 군인으로 생각해요. 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군인으로 생각하는 게 더 무서워요. 우리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군인이 일반 국민들을 상대로 치안 서비스를 하고 있는 거라니까요. 근본적으로 잘못된 문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