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황식 국무총리가 7일 국회 외교·통일·안보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EU 자유무역협정(FTA) 협정문 번역 오류와 관련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해 관련된 사람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남소연
김황식 국무총리는 7일 이번 한-EU FTA 협정문 번역 오류와 관련해, "정부로서 할 말이 없다, 대단히 죄송하다"면서 "통상교섭본부장을 포함해 관련된 사람들은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번역 오류 문제에 대해 총리가 직접 책임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국회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문에 나선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협정문 번역 오류는 세계적 망신"이라고 질타하자, 김 총리는 "죄송하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어 천 의원이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은 파면감 아닌가"라고 묻자, 김 총리는 "파면은 있을 수 없고, 국무위원이 아니니 해임 건의는 아니겠지만 번역 오류와 관련해 혼란을 가져오고 국민에게 실망을 준 부분에 대해서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 대통령과 상의하겠다"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정부 일부에선 총리가 대통령에게 통상교섭본부장의 교체를 사실상 건의하겠다는 뜻으로 보고 있다.
정부 한 관계자는 "이미 밝혔듯이 정부에서 이번 사건에 대해 조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조사 결과 관련 당사자들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며, 김 본부장도 대상자"라고 말했다.
그는 "총리가 대통령과 상의를 하겠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조사 결과가 나오는대로 이를 가지고 의견을 개진하시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야당과 시민사회 "사퇴하라"...김종훈 "책임 회피 않을것"이에 앞선 지난 6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서도 김종훈 본부장에 대한 문책론이 이어졌다. 박주선 민주당 의원은 "EU FTA를 국회에서 두번씩이나 철회하고, 세번을 제출하는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면서 "번역을 맡은 하위직 공무원에 대한 문책 조치 이외 김 본부장이 사임해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동철 의원은 김 본부장이 4년 넘게 교섭본부을 맡고 있는 점을 들면서 "통상교섭본부장이란 자리는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하고 실수가 용납돼서는 안된다"면서 "한 사람이 이 직을 4년이나 맡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실수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선영 자유선진당 의원은 현재 발효중인 한-인도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의 한글본에서도 오류가 심각하다면서,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외교부를 믿을 수 있느냐"고 강조했다.
김종훈 본부장은 야당의원들의 사퇴 주장에 대해, "외국의 (통상 협상) 카운터 파트를 보면 저보다 오래한 사람도 없진 않다"면서 "하지만 4년간 집중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도 있다"고 시인했다.
7일 하루 일정으로 중국 상무장관과의 회담을 위해 출국한 김 본부장은 자신의 거취 문제가 계속 거론되자, "책임을 모면하겠다거나, 회피할 생각은 추호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이어 "인사권자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내 직분"이라고 말해, 자진해서 사퇴할 생각이 없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외교부 안팎에선 김 본부장의 교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어떤 모양새를 취하느냐만 남았다는 것이다.
외무고시 8회로, 38년차 베테랑 외교관인 김종훈 본부장. 굵직한 통상협상의 야전사령관으로 '검투사'라는 별명까지 가진 그 역시 이제 쓸쓸한 퇴장의 앞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