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야기현 마쓰시마 즈이간지 본당 앞에는 홍매화 한 그루와 백매화 한 그루가 용처럼 누워 있다. 길게 누워서 자라는 모습이 마치 용이 엎드려 있는 것과 같다고 해서 와룡매라고도 부른다. 해마다 4월 중순쯤 꽃망울을 터트리며 즈이간지의 명물이자 현이 지정한 천연기념물로 사랑받고 있다. 이 나무는 원래 우리 땅에서 자랐던 매화이다. 창덕궁 선정전 앞에 있던 것을 임진왜란 중인 1593년 마쓰시마 영주였던 다테 마사무네가 무단으로 뽑아간 것이라고 한다.
책을 읽으며 문득 임진왜란 때 도난당해 일본에서 귀한 대접 받고 있다는 이 매화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일본 대지진의 피해로 이미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과 함께. 여하간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즈이간지의 조선 매화는 1991년에 최초로 귀환, 현재 수원농생명과학고등학교에 건강하게 자라며 해마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있다니 말이다.
학교 정문에서부터 130m 매화길 펼쳐진 '김해건설공업고'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옆 식물원 분수대 앞의 15년생(글 쓴 시점) 와룡홍매와 와룡백매도 즈이간지에서 귀환된 우리 매화들이다. 일본의 1999년 즈이간지 사찰측에서 일제의 한국침탈을 참회하는 의미로 와룡매 가지를 각각 접목하여 얻은 자목을 기증한 것들이라고 한다.
경삼남도 김해시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는 원래 1927년 김해농업고등학교로 출발하였고 1978년 현재의 학교가 들어섰는데, 농업고등학교 개교 당시 한 일본인 교사가 의욕적으로 매화를 심고 가꾼 것이 계기가 되어 매화나무가 많아졌다고 한다. 몇 해 전에 그 일본인 교사가 90대 노인이 되어 이곳에 찾아와 자신이 심었던 고매들을 둘러보고 갔다고 한다. 교문을 들어서면 줄지어 서 있는 고매들 중에서 와룡홍매를 '김해와룡홍매'라 부른다.
아름다운 매화가 많아 해마다 이른 봄에 매화 축제가 열리고 탐매객들의 발길이 이어진다는 김해건설공업고등학교의 매화 이야기도 인상 깊다. 학교 정문을 들어서서 130m에 이르는 진입로 양쪽에 30~100여 년의 고매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특히 와룡매가 많다니 나무 혹은 매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만을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도 좋을 것 같다.
솔직히 매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지라 해마다 봄이련가 싶게 들려주는 혹자들의 매화 소식에 '왜 저토록 매화에 빠져있나?' 의아할 때가 많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자 마음먹은 것은 저자의 <우리가 꼭 지켜야 할 우리 종자>와 <내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란 책을 통해 인식을 거의 하지 못한 우리 토종 종자에 관심을 두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와 내 가족의 살이 되었을, 내 생명의 근원에 너무도 소홀했구나하는 자책과 함께.
책을 통해 만나는 매화는 실로 놀라웠다. 이제까지 알고 있었던 매화는 말하자면 한 마리 새의 깃털 한두 개에 불과한 정도였구나 싶을 정도로. 그 많은 매화들이 어떻게 다른가. 꽃의 색깔이 같으면 꽃모양이 다르고, 꽃 색깔과 모양이 같으면 꽃받침이 다르고, 이들이 모두 같으면 줄기나 잎, 열매가 다르고… 책에서 다루고 있는 250여 점의 매화가, 얼핏 같아 보였던 매화가 제각각, 전혀 같은 꽃이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똑같은 사람 없고 쌍둥이라고 해도 어딘가 분명 다른 것처럼 말이다.
안타깝고 분한 마음에 일본이 가져간 우리 매화에 치우쳐 책을 소개한 것 같아 한편 아쉽다. 덧붙이자면, 이들 매화 이야기는 책의 아주 적은 부분에 불과하다. 책에는 민가나 논둑의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매화부터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매화까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 오죽헌의 매화처럼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심고 사랑한 매화까지 우리 매화 250여 점이 그윽한 향기로 탐매여행을 유혹하고 있으니 함께 취해보시는 것은 어떠실지.
아래는 저자 안완식 박사와 한 전화 인터뷰 내용이다.
- 우리 매화 350여 점을 답사, 수집했다고 들었다. 우리나라의 전체 매화 중 어느 정도를 답사, 수집했다고 생각하시는지?
"책이 출간되고 어떤 분이 자기네 집 매화도 오래되었다는 연락을 해왔다. 우리 매화를 최대한 담고자 했으나 미흡한 부분도 어찌할 수 없다. 그래도 90% 이상은 답사, 수집했다고 자신하고 있다. 분량 때문에 350여 점을 모두 다루지 못했다. 어쩔 수 없이, 100년 안팎의 고매들을 위주로 우선 다뤘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 꽃부터 열매까지, 매화 한 그루 마다 다양한 사진과 이야길 들려주고 있다. 매화마다 한두 번 찾아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을 것 같다. 대략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가?
"지방과 종류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매화는 이른 봄에 꽃이 피고, 대략 6월쯤에 열매가 열린다. 매화 모두 꽃이 피지 않았을 때와 꽃이 피었을 때, 잎이 무성하고 열매가 열렸을 때, 열매가 익었을 때를 사진으로 기록했으니 매화 한 점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자 대략 몇 번 찾았겠는가? 쉽게 셀 수 없다. 세월로 따지자면 30년쯤 되었다. "매화가 아무리 좋아도 그렇지 어떻게 이처럼 오랫동안 매화에 빠질 수 있는가?" 라고 묻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매화를 단지 매화로만 보았다면 힘들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것, 우리 토종을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는 마음이 앞섰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책을 통해 만난 서울 남산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부근에 있다는 매화가 남다르다. 찾아가 보고 싶다. 임진왜란 때 일본인들이 가져간 미야기현의 와룡매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원래 3월에 일본에 갈 예정이었는데 지진때문에 어긋났다. 미야기현의 매화들의 생사여부는 아직 확인이 되지 않고 있지만 사라졌을 가능성이 많아 아쉽다. 올해는 예년보다 매화가 10일 가량 늦게 피고 있다. 안중근의사기념관 부근 매화는 아마도 다음주 쯤에는 꽃망울을 터트리지 않을까 싶다."
1942년에 출생, 서울대학교 농과대학을 졸업, 관련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농촌진흥청 연구원으로서 밀 육종과 식물유전자원 연구 등을 했다. 식물유전자원 국제회의 한국대표로 여러 차례 참석 등 관련 활동과 연구를 계속해오다 2002년에 정년퇴직, 현재는 한국토종연구회 고문과 우리 토종 종자 지킴이 모임인 씨드림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위 사진은 저자가 2008년 5월 16일 씨드림(cafe.daum.net/seedream)회원들과 청산도를 찾아 우리 토종 종자를 채집, 농사에 관해 채록하고 있는 모습 중 하나다. <우리가 지켜야 할 우리 종자>(1999), <내 손으로 받는 우리 종자>(2007),<한국토종작물자원도감>(2009)을 썼다.
우리 매화의 모든 것
안완식 지음,
눌와,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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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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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이황의 유언... "저 매화나무에 물을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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