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체투지 순례기도 참여신장 치료를 하는 중에도 여러 번 오체투지 순례기도에 참여하곤 했다. 2009년 4월 23일 오체투지 순례기도 중 잠시 휴식할 때 문규현 신부님과 함께.
지요하
고장의 산길 들길 해변 길을 거의 모두 걸었다. 하루 20리가 기본이었고, 묵주기도는 40단 이상이었다. 길에 대한 호기심과 한 번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처음 밟을 때의 감회는 언제가 신선하고 흐벅졌다. 고장의 거의 모든 길을 걸어보는 데서 오는 자부심도 있었다.
그러다가 2007년 12월 7일 발생한 태안 앞바다 유조선 원유유출사고는 내 일상을 앗아가 버렸다. 거의 매일 해변에 가야 했다. 2008년 1월 1일부터 천주교 태안성당 총회장을 맡게 된 나는 '기름과의 전쟁'에 몰두해야 했다. 연일 전국 각지에서 오는 천주교 신자 자원봉사자들을 작업 현장으로 안내하고, 작업 요령을 설명하고, 작업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내 임무였다.
떡국을 끓여 점심을 제공한 후에도 계속 현장에 남아 뒷마무리까지 하고 일일이 배웅을 한 다음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거의 하루 종일 해변에서 기름 냄새를 맡으며 생활하고는 밤에는 원고 작업을 해야 했다.
생활 리듬이 깨진 상황에서 자연 과로가 누적되었고, 면역력이 급속히 저하되어 그만 세균에 감염되고 말았다. 세균 증식에 의한 종격동(심장과 폐와 식도 사이) 농양 발생으로, 또 전신으로 농양이 전이된 상태에서 온몸을 꼼짝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어 119구급차 신세를 지고 말았다.
서울성모병원에서 정밀 검사 후 수술을 받았다. 흉부외과 팀이 4시간 동안 수술을 했고, 이어서 정형외과 팀이 4시간 30분 동안 수술을 했다. 거의 9시간 만에 수술실에서 나올 수 있었다. 면역 항체가 생겨나지 않아 의료진이 긴장한 가운데 도합 44일 동안 입원 생활을 했다.
그때 신장을 많이 다쳤다. 가뜩이나 신장을 압박하는 세 가지 성인병을 지니고 살아온 처지에서 고단위 항생제를 계속 투여하고 갖가지 다량의 약물을 복용하니, 신장이 많이 손상될 것은 당연지사였다. 병원의 주치의(흉부외과 과장)는 내가 퇴원할 때쯤 내 신장 걱정을 했다. 신장내과 선생님을 꼭 만나보라는 권유였다.
1년 내내 사순절처럼... 하지만 천행이다한때 내 신장수치(Creatinine)는 2.5까지 올라갔다. 3.0에 이르면 혈액투석 단계라고 했다. 그러니까 신장이 80% 정도 망가진 상태라는 얘기였고, 나머지 20%가 망가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두려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는 "신장도 한번 손상되면 회복이 어렵다"는 말 앞에서도 낙담하지 않았다. 동네 의사는 "세월을 이기지 못한다"라는 사려 깊지 못한 말도 했지만, 나는 '누가 이기나 보자' 하는 오기를 머금었다. 현상 유지, 또는 최악으로 가는 것을 지연시키는 것이 고작인 치료법을 피하고 한방 치료를 선택했다. 정상 회복에 대한 희망을 품은 것이었다.
"병의 50% 정도는 의사가 고치고 50% 이상은 환자 본인이 고치는 법"이라는 한의사의 말을 명심했다. 음식을 가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고, 매일의 걷기운동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자연 신장 환자에게는 칼륨 섭취를 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통풍을 일으키는 요산도 방지해야 한다. 요산을 만들어내는 퓨린 성분이 들어 있는 음식도 제한해야 하고, 신장의 적인 칼륨이 들어 있는 음식도 피해야 한다. 이미 만성 상태가 되어 버린 통풍은 의사가 처방해주는 약을 지속적으로 복용하면서 음식 조절을 하는 외로도 내 나름의 방법으로 관리를 함으로 1년 전부터는 통풍 재발의 고통을 겪지 않는다.
당뇨와 고혈압도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 아직은 지속적으로 걷기 운동도 할 수 있고, 내 나름의 방법으로 관리를 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가 현재 가장 신경을 쓰는 것은 신장이다. 한 2년 정도 한방치료를 하다가 약값이 좀 부담스러워 지금은 자가 치료만을 하고 있는데, 신장 기능이 많이 좋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최근의 혈액검사 결과 신장수치는 1.7을 기록하고 있다. 70% 정도 회복되었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