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알 자지라>
바샤르 알 아사드(46). 그가 태어난 1965년,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는 시리아의 국방부 장관이 됐다. 하페즈는 단순한 임명직 장관이 아니었다. 1963년 서구 제국주의에 맞선 '하나의 아랍 사회주의 국가' 건설을 주장하며 쿠데타에 성공한 바트당의 핵심 인물이었다.
하페즈는 1970년 다시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을 몰아내고, 그 이듬해(1971년)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하페즈는 2000년 6월 10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집권 기간 동안 하페즈는 대외적으로 이스라엘에 강경한 태도를 취하는 한편 정치적 수완을 발휘해 아랍에서 시리아의 위상을 높이며 '아랍의 비스마르크'로 불렸다. 대내적으로는 1946년 독립 이후 쿠데타가 끊이지 않던 시리아의 정국을 안정시켰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그 안정은 반대파에 대한 탄압과 유혈 진압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하페즈는 철권통치를 했다. 1963년 선포된 국가비상사태법(이는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을 적용해 반대파 인사 수천 명을 감옥에 가뒀고, 1982년엔 무슬림형제단을 유혈 진압했다(이때 하마 시에서는 2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진다).
정치에 관심 없던 바샤르, 형의 죽음으로 인생이 바뀌다하페즈는 아들에게 권력을 물려주고자 했다. 그러나 애초 그 자리는 바샤르의 몫이 아니었다. 후계자 수업을 받은 건 바샤르의 형 바실이었다. 바샤르는 안과의사가 되고자 했다. 1988년 다마스쿠스 대학에서 안과 학위를 받은 바샤르는 1992년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영국 런던으로 떠났다.
<알 자지라>에 따르면, 바샤르는 정치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바샤르의 인생은 1994년 180도 바뀌었다. 유력한 후계자로 여겨지던 형 바실이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기 때문이다.
바샤르는 다마스쿠스로 돌아와야 했다. <가디언>은 이에 대해 "바샤르가 후계자 수업을 받기 위해 소환됐다"고 전했다. 안과의사의 길은 멀어졌고, 바샤르는 아버지에게서 권력을 물려받기 위한 수순을 밟았다. 1994년 탱크부대 지휘관이 된 바샤르는 아버지 하페즈가 사망한 2000년에는 군과 바트당의 지도자로 부상해 있었다.
그러나 바샤르가 하페즈의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장애물'을 한 가지 치워야 했다. 만 40세 미만은 대통령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한 헌법이었다. 시리아 의회는 바샤르를 위해 나이 제한 조항을 뺀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그 후 바샤르는 투표를 통해 대통령으로 선출돼(찬성률이 97%가 넘었다) 2000년 7월 11일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