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에 들어서 부터 늘 기타를 껴안고 생활했던 송인효 녀석, 1년도 채 안돼 몇곡의 노래를 작곡작사해서 노래불렀습니다. 풀무고등학교에서 농사일을 배워가며 좀더 깊이 있는 노래를 불렀으면 합니다.
송성영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이하 풀무고등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기 위해 보따리 보따리 싸들고 충남 홍성으로 가던 날, 큰 아이 송인효에게 말했습니다.
"너 풀무고등학교에서 대학 가지 않아도 될 수 있는 자신감을 얻었으면 좋겠다.""대학가서 실용음악 전공하고 싶은데….""좋지, 하지만 전에도 말했지만 대학 갈 때 입학금만 마련해 줄테니께 나머지는 니가 알아서 해야 한다잉, 그 입학금 가지고 여행을 떠나든지 아니면 정 대학에 가고 싶으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장학생으로 다니든지 아르바이트를 하든지 그건 니가 알아서 해야 혀."그렇게 큰 아들이 홀로서기를 위해 풀무고등학교로 떠난 지 4주째로 접어들었습니다. 기숙사 생활을 위해 집을 떠나던 날, 홀로서기는 둘째치고 나만큼이나 느려터진 녀석이기에 부지런하게 생활해야 하는 풀무고등학교에서 적응을 잘 할까 내심 걱정이었습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가끔씩 밭일을 함께 하곤 했습니다. 작은 아이 인상이 녀석은 끝까지 남아 농사일을 거들어 주었는데 인효 녀석은 건들거리며 밭일을 마치기도 전에 이 핑계 저 핑계로 은근슬쩍 빠져 나가기 일쑤였습니다. 부지런히 일하는 개미들 옆댕이에서 할 일 없이 노래하는 베짱이 같은 녀석이었습니다.
하루 종일 진행된 풀무고등학교 입학식이 열리던 날, 부모 자식이 나란히 앞에 나와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인효 녀석의 게으름을 만천하에 까발렸습니다.
"녀석과 친구처럼 지냈는데, 떠나 보내려니 섭섭합니다. 하지만 더 많은 좋은 친구들이 생겨 기분이 좋습니다. 사실 우리 인효 놈은 머리를 잘 쓰는데 몸을 잘 안 씁니다. 아주 게으른 놈입니다. 이 학교에서 농사일을 배워가며 부지런해 졌으면 좋겠습니다. 녀석이 요즘 노래를 만들어 부르기도 하는데, 이곳에서 땀 흘려가며 좀 더 깊이 있는 노래 부르기를 기대 합니다." 머리 잘 돌아가는 녀석이 그냥 있을 리 없었지요. '아주 게으른 놈'이라는 말에 곧장 반박 성명을 냈습니다.
"우리 아버지는요. 저 보다 더 게을러요."
짜식이 게으르다니, '게으른 것'이 아니라 '느린 것'인데 억울했습니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격이었습니다. 게으르다는 말 때문에 늘 지 엄마하고 다투는데 참으로 억울했습니다. 변명을 하려 하다가 그만뒀습니다. 녀석이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말을 썼기 때문입니다. 늘 아빠라 부르다가 처음으로 아버지라는 호칭을 썼던 것입니다. 그 '아버지'라는 말 한마디에 녀석의 기숙사 생활에 대한 걱정을 다소 접을 수 있었습니다.
"그럼 기타 좀 보내줘"그럼에도 한편으론 걱정의 끈을 놓을 수 없었습니다. 출퇴근이 없는 자택근무의 부모와 늘 함께 생활했던 녀석이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도 채 못 견디고 뻔질나게 전화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보기좋게 빗나갔습니다.
일주일 내내, 그리고 또 일주일 내내 그렇게 3주가 넘게 녀석으로부터 단 한 통의 '그리움'을 애걸하는 전화가 없었습니다. 그 사이에 녀석의 엄마가 전화 한 것이 전부입니다. 풀무고등학교에서는 핸드폰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학내에 공중전화가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집으로 전화를 걸 수는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