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헌법 찬성 77.2%, 근데 왜 앞날이 걱정되지?

이집트 개헌안 국민투표의 후유증... 곳곳에 남겨진 폭력의 흔적

등록 2011.03.23 12:42수정 2011.03.2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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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 소식을 다룬 신문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지난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 소식을 다룬 신문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김덕련
지난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무바라크 사임 소식을 다룬 신문들을 펼쳐 보이고 있다. ⓒ 김덕련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헌법수정법안에 대한 국민투표가 지난 19일(현지시각), 드디어 이집트 전역에서 실시됐다. 근본적인 사항들은 쏙 빼놓은 채 '바꿔보았자 별로 바꾼 티는 나지도 않을' 법안 몇 개만이 헌법위의 수정작업을 거쳤다. 더더군다나 가장 큰 논란을 빚었던 '헌법 제2조', "이집트의 국교는 이슬람"이라고 명시한 조항은 여전히 그 자리를 떡하니 지키고 있었다.

 

'카이로의 봄' 주역들을 비롯하여 차기대권주자인 암로 무사와 엘바라데이마저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할 법안들'이라며 국민투표 자체를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군최고위원회는 귀기울이지 않았다.

 

무려 80% 이상이라는 '이집트 헌정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투표율'을 보인 당일, 이집트 전역에는 크고 작은 폭력의 흔적이 남았다. 카프르 엘 셰이크에서는 NDP(전 여당인 국민민주당)가 유권자들에게 '개헌안 찬성'표를 강요하다 적발됐고, 6 옥토버시에서는 한떼의 사람들이 역시 찬성표를 위압적으로 강요했다.

 

이집트 곳곳에 남겨진 크고 작은 폭력의 흔적

 

베니수에프주에서는 화기를 소지한 폭력배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출몰했고, 카이로와 기자의 몇몇 곳에서 유권자들간 유혈충돌이 발생했으며 일부는 총기를 소지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또 어떤 지역에서는 투표용지가 부족했으며 또 어떤 지역에서는 '지워지기 쉬운 잉크'가 지급되어 잡음이 일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콥틱교도들이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는 같은 투표소를 이용하지 않겠다며 버티다가 충돌을 초래하기도 했다.

 

모캇탐지역의 투표소를 방문했던 엘바라데이와 그의 아내, 그리고 그의 지지자들 앞에 이슬람 원리주의자들과 폭력배들 수백 명이 나타나 "엘바라데이는 미국의 끄나풀이다, 우리는 그를 원치 않는다"라며 돌을 던지는 사태도 발생했다.

 

하지만 온갖 우여곡절 끝에 나타난 결과는 대다수 국민들의 예상대로였다.

 

찬성 77.2%, 반대 22.8%

 

이것이 '2011 이집트 시민혁명'이 받아든 최초의 성적표다. 국민투표를 주도한 군최고위원회와, MB(무슬림 형제단)과 NDP(국민민주당)는 이제 '안정적으로' 다음 순서인 '국회의원선거'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22.8%의 반대파들은 '국회의원선거가 급한 것이 아니다, 대통령선거를 먼저 치러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이집트 국민들간의 분쟁이 계속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벌써부터 우려되는 이슬람 원리주의

 

 지난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시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1월 25일 혁명'을 기념하는 벽화를 그리고 있다. 시민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등으로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문구 등도 적어 넣었다.
지난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시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1월 25일 혁명'을 기념하는 벽화를 그리고 있다. 시민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등으로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문구 등도 적어 넣었다.김덕련
지난 2월 12일(현지 시각)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으로 향하는 길가에서 시민들이 독재자 무바라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1월 25일 혁명'을 기념하는 벽화를 그리고 있다. 시민들은 영어와 프랑스어 등으로 '나는 이집트를 사랑한다'는 문구 등도 적어 넣었다. ⓒ 김덕련

21일인 오늘 콥틱교의 교황인 쉐누디3세가 18일간의 병가를 마치고 카이로로 돌아왔다. 그는 "콥틱교도들을 비롯한 소수의 기타 종교 신도들을 위하여" 헌법 제2조 "이집트의 국교는 이슬람으로 한다"는 조항에 약간의 사항을 첨부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정부는 그의 요구를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이슬람계의 종교적 지주인 알 아즈하라 모스크는 이같은 정부의 태도가 "이슬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엄중경고하기를 서슴치 않았다. 이는 정부가 벌써 이슬람계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했다.

 

전인구의 10%에 육박하면서도 앞으로 펼쳐질 노골적인 종교차별을 우려하는 콥틱교도들과, 사회적 진출과 인권에 제어를 받을 것이 분명해진 여성유권자들, 그리고 '카이로의 봄'을 주도하며 '이집트는 하나'를 외치던 혁명의 주역들이 결사적으로 개헌안 반대를 외쳤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국민투표를 마치고, 결과가 나오기까지 만 하루를 더 보낸 지금 이집트의 혁명가들은 '계속적인 투쟁'을 할 것인지 '투쟁을 포기하고 정부의 정책에 탑승'할 것인지를 놓고 양분되고 있다. 특히 후자는 '점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자'고 주장하고 있어 대다수 국민들의 호응을 받고 있다. MB(무슬림 형제단) 내부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청년층과, '카이로의 봄'의 주역들이 '끝까지 투쟁'을 주장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이다.

 

어찌되든간에 타흐리르광장을 깨끗하게 치우고 힐러리를 맞이했던 군최고위원회와, 모캇탐에서 차기 대권주자인 앨바라데이를 향해 돌을 던지는 행위를 '묵인한' 장본인이 동일인물들이라는 데에 2011년 3월 이집트의 현주소가 있다. 21일 이집트를 전격방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집트는 자유의 피라미드를 쌓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진정한 자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이집트인들이 가야할 길은 아직도 너무나 멀고 넘어야할 산들은 너무나 험하다.

 

지난해 6월 알렉산드리아에서 마약을 밀매하는 경찰들을 목격했다는 죄 아닌 죄로 경찰에 의해 구타 살해당한 19살의 청년이 있다. 그의 이름은  '칼리드 모하메드 사이드'. 축구를 하러 나간 그 길로 주검이 되어 돌아온 그날로부터 페이스북에서는 '우리는 모두 칼리드 사이드' 운동이 일어났고, 청년 사이드의 죽음은 2011년 이집트 시민혁명의 단초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집트 전역에는 수백 만의 '칼리드 사이드'가 건재하다고 이집트인들은 굳게 믿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에도 실립니다. 서주 기자는 현재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교민입니다. 

2011.03.23 12:42ⓒ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글은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에도 실립니다. 서주 기자는 현재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교민입니다. 
#칼리드사이드 #이집트시민혁명 #이집트국민투표 #서주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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