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지 <살림이야기> 봄호 겉그림
한살림
설명하면, 단1회만 싹이 트고 자라 열매를 맺도록 미국과 같은 선진국들이 품종개량·판매하는 1회용 씨앗으로, 예전처럼 열매가 좋다고 씨앗을 받아 다음해에 심으면 싹이 아예 나지 않거나 싹이 나도 우리 텃밭의 호박이나 어머니의 참깨처럼 열매를 맺지 못한단다. 종자회사들이 자신들이 만든 상품인 씨앗을 해마다 팔아먹으려고 그처럼 품종 개량한 것이다. 슈퍼종자들은 더 이상 번식을 못하니 '불임씨앗'이라는 표현도 적절할 것 같다.
슈퍼씨앗을 염두에 두고 어머니께 참깨와 호박의 씨앗에 대해 물었더니, 참깨는 쌀집에서 한 홉을 사서 심은 것이고, 호박은 친정아버지처럼 종묘상에서 모종으로 사다 심었는데 많이 열려 종자가 좋은 것 같아 씨앗을 받아 심은 것이란다. 참깨와 호박이 하나도 열리지 않은 이유가 비로소 이해되었다. 이들은 슈퍼종자의 2세였던지라 모양은 멀쩡했지만, 수정을 하지 못한 것이다. 이들 꽃들에 날아든 벌들이 모은 꿀은 괜찮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농사를 짓지 않는 대부분의 일반인들에게 슈퍼종자의 존재는 낯설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처럼 텃밭이나 주말농장에 씨앗을 받거나 얻어 심었는데 열매를 맺지 않으면 이상기후 탓으로 돌리거나 귀신이 곡할 노릇, 혹은 우리 어머니처럼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의아해 하고 황당해 한다. 그런데 이는 오늘날 우리 농촌이 처한 현실이고, 우리 농부들이 해마다 뼈아프게 겪고 있는 일이다.
전남 함평의 귀농 5년차 농부 박진선씨는 올해 세 살 배기 아들의 돌반지를 팔기로 했다. 당장 주저앉은 비닐하우스를 다시 세워 올려야 했고, 봄을 코앞에 두고 들어가야 할 돈이 이만저만이 아닌 터였다. 한 돈짜리 금반지를 팔아 손에 쥔 돈은 19만원. 금값이 많이 올라 시세가 좋다는 말도 들었지만 박씨는 허탈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 돈으로는 그가 주력으로 재배하는 파프리카 종자를 한 줌도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금값보다 씨앗 값이 더 나가는 시대다. 현재 금의 실거래 가는 1g당 5만 원선. 반면 신품종이라는 파프리카 종자의 경우 g당 11만 7천원, 토마토도 12만 원선으로 거래되고 있다. 새로운 품종이 나타날 때마다 치솟는 종자 값에 농사철을 앞두고 한숨부터 나오지만 반대로 종자회사로서는 바닥나지 않는 금광을 채굴하듯이 고부가치 미래사업의 승자가 되기 위해 열을 올리고 있다.-계간지 <살림이야기> '종자 전쟁이 치열하다'에서우리가 오래전부터 재배해 오지 않은, 식생활의 변화로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파프리카, 브로콜리 등과 같은 일부 작물들에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혹 있으랴. 전혀 아니다. 배추, 무, 상추, 쑥갓, 파, 양파, 감자, 고구마, 생강 등 우리가 오래전부터 재배해 왔으며 우리밥상에 자주 오르는 거의 모든 작물들이 예전처럼 종자가 좋은 것 같다고 받아 심으면 애써 농사지어 수확할 수 없는 지경까지 되기 때문에 박씨처럼 금값보다 비싼 씨앗값을 해마다 지불하고 농사를 지어야만 하는 위기에 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