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이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저가발행' 배임 사건의 피고발인 신분으로 2008년 3월 4일 오후 서울 한남동 삼성특검 사무실로 소환되고 있다. <중앙일보> 사회부장을 역임했던 이상언 회장실장(홍 회장의 오른쪽 붉은색 타이)이 이날 홍 회장과 함께 특검에 출석했다.
남소연
2005년 1월. 'X파일' 회오리가 거세게 일기 시작했다. 발단은 MBC 이상호 기자가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의 불법 도청 테이프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뒤, 재미동포에게서 관련 자료를 입수하면서 불거지기 시작했다. 약 95분 분량의 도청 테이프에는 1997년 대통령선거 당시 삼성그룹의 고위 임원과 <중앙일보>의 사주가 만나, 특정 후보에게 대선 자금을 불법으로 지원하기로 공모한 내용 등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같은 해 6월 16일. MBC 보도국 간부회의에서는 이 기자가 취재한 'X파일'에 대한 보도 불가 결정을 내렸다. 이로 인해 'X파일'에 대한 의혹은 더욱 커져만 갔다. MBC의 보도 불가 결정을 비판하는 여론도 잇따랐다. 이런 와중인 7월 21일 <조선일보>는 김영삼 정부 때 안기부의 비밀조직이 정계·재계·언론계 인사들의 대화를 불법 도청한 사실을 보도했다.
급기야 다음 날인 7월 22일. MBC가 <뉴스데스크>를 통해 'X파일' 등장인물 실명과 대화 내용을 보도하면서 파장은 더욱 커졌다. 고질적인 '정-경-언 유착'이 세간에 통렬하게 알려진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는 컸다. 문민정부를 자처한 김영삼 정부의 불법도청 사실,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일상적으로 행해진 광범위한 불법도청, 사건 수사기관 선정 및 수사방법, 삼성그룹에 대한 소극적 수사, 국민의 알권리 충족 문제, 언론의 보도 경향 등 시간이 흐를수록 논란과 의문은 증폭됐다.
이 내용을 토대로 참여연대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관계자와 정치권 관련자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검찰은 도청 테이프의 유출 경위에 대해서만 조사해, 삼성 봐주기 수사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따가운 눈총을 받았다. 검찰은 또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시절 국정원장을 비롯한 국정원 도청 관련자들을 수사하고, 같은 해 12월 14일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회사 돈을 빼돌려 불법 정치자금 100억 원을 이회창 후보 측에 제공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등 삼성 측 관련자에 대해서는 증거 불충분과 공소시효 만료 등을 이유로 전원 무혐의 처리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으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현직 검사들에 대해서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모두 무혐의 처리했다.
반면, 이상호 기자는 통신비밀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2심은 "언론이 위법 수집 증거에 접근해 본연의 사명을 달성했지만 통신비밀보호법은 정보의 불법수집과 공개누설 행위를 동일하게 처벌하고 있다"며 선고유예 판결을 내렸다.
"안기부 X파일 보도 유죄" vs. "공공 이익과 공적 관심 조롱한 판결"6년여가 흐른 뒤, 2011년 3월 1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안기부 X파일' 내용을 보도한 혐의(통신비밀보호법위반)로 기소된 이 기자에 대해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징역 6월 및 자격정지 1년의 형을 선고유예한 원심을 확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불법 감청과 녹음에 관여하지 않았더라도 언론기관의 도청 내용 보도가 위법성이 없는 정당행위가 되려면 불법 감청 사실 자체를 고발하기 위한 보도 목적이 있거나, 공중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공익에 중대한 침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뚜렷해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시민사회단체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언론개혁시민연대(이하 언론연대)는 18일 성명을 내고 '안기부 X파일' 보도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결정을 "공공의 이익과 공적 관심을 조롱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연대는 '제 얼굴에 침 뱉은 대법원 전원합의체 삼성 X파일 보도 유죄 판결'이라는 성명에서 "삼성그룹의 2인자 이학수 당시 삼성그룹 비서실장과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97년 12월 대통령 선거 후보들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전달하는 논의 내용이 담긴 '삼성 X파일'을 보도한 것이 공공의 이익과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아주 웃긴 일"이라고 꼬집었다.
참여연대도 이날 '안기부X파일 보도 유죄판결 유감'이란 논평에서 "8년 전이라 이미 시의성을 잃었고 비상한 공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다수의견을 낸 대법관들이 정경유착의 관행을 막을 '법적·제도적 장치'가 아직 정착하지 않은 우리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판단"이라며 "오히려 소수의견에서 지적한 대로 '불법적인 방법을 통해 대통령 선거와 검찰조직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행태는 민주적 헌정질서의 근간을 해치려는 것으로 매우 중대한 공공의 이익과 관련 있다'고 할 것"이라고 일갈했다.
권력비리의 공개는 주로 내부고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또한 내부고발의 특성상 직업상의 비밀유지의무를 위반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이를 모두 불법으로 단죄한다면 내부고발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MB정부 들어 인권과 표현의 자유가 UN에서 걱정할 만큼 위축된 상황이다. 이토록 지독한 한국형 '에피스테메 지체' 개선은 요원한 것일까.
[# 장면 셋] 최시중과 MB 그리고 <동아일보> 서로 무슨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