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월미도. 폭격 전 월미도. 해변의 열지어선 건물이 미군 막사. 산쪽으로 붙은 작은 집들이 월미도 원주민 지역. 미군은 해방 후 부터 월미도에 막사를 짓고 살았으며 월미도 주민들과 교류가 있었고 이곳지리도 익숙했다. 월미도 폭격 시 미군막사는 한 채도 손상되지 않았다.
NARA 비밀해제 사진
- 포항지역 미군폭격 사건 등을 포함 한국전쟁 중 미군이 관련된 민간인학살 사건들이 대부분 이영조 진실위 위원장 체제 하에서 기각되거나 진실규명 불능 되어서 아쉬운 면이 있다. 미군사건을 조사했던 조사관 입장에서 진실위에서 미군사건을 다루면서 가장 어려웠던 애로사항은? 아울러 향후 인권문제에 좀 더 신경을 기울이는 새 정부가 들어 설 때 미군사건 관련하여 추가 조사나 진실규명 할 여지가 있나?
"애로사항은 조사대상을 규정한,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민간인 집단희생 사건"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문제였다. 참고로 공소시효 제도가 있는데, 이 제도를 둔 취지 중 하나는 아무리 흉악한 범죄라도 15년 내외의 기간이 지나면 증거가 사라져 불법성 입증이 어렵다는데 있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행위를 고소, 고발해도, 국가가 수사할 사건으로 받아주지 않고 각하하는 것이다.
다만 전쟁범죄 경우에는 온 인류에 대한 반인륜적 범죄성 때문에 공소시효를 두지 않고 재판관할권도 특정국가에 한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쟁범죄자에 대해서는 세계의 모든 나라가 언제까지라도 추적해서 반드시 처벌해야할 국제적 의무가 있다.
조사과정의 애로사항은, 60년이 지난 사건이어서 증거수집이 어려운데 더하여, 가해자로 지목되는 것이 미국 군인인데 이들을 소환조사할 방법이 없는 것이 가장 큰 애로였다. 미군사건의 경우는 전쟁범죄 혐의가 있기에 공소시효 적용이 없고 국가가 반드시 추적, 처벌해야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한국이 인권국가를 추구한다면 인권을 강조하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 당연히 추가 조사할 것으로 믿는다."
- 한국전쟁 중 미군이 관련되어 한국 민간인이 희생 된 사건의 전체적 피해자 수나 사건의 규모, 건 수 등을 추정 한다면?"진실위에 신청된 사건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발생일자, 장소가 다른 신청사건이 171건이었고 확인된 희생규모는 5292명이었다. 거주지에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혹은 가족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가 희생된 경우가 많다. 일가족이 몰살된 사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제네바협약에 명시된 특별보호 대상인 여성(45.57%), 어린이 노인의 비율이 높다. 실제 희생자 수를 알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이미 60년이 지난 사건이고 고향을 떠나 피난 중에 발생한 사건이 많기 때문이다. 또 진실규명 신청절차에서도 신청기간이 한정되어서 실제 피해자 중 상당수가 신청절차를 몰랐고, 이미 관련자가 세상을 떠나서 신청하지 못한 경우도 많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 진실위 이영조 위원장 체제 하에서 전 안병욱 위원장 체제보다 미군사건 진실규명 기준이 대폭 강화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수차례 있었다. 어떤 기준들이 어떻게 강화 되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불법성' 인정을 위한 증거요구를 일반 형사사건의 유죄확정에 필요한 증거 수준과 유사하게 높였다. 60년이 경과한 사건이고 가해자 측을 조사하기 거의 불가능한 점을 고려하며, 또 법 취지가 궁극적으로 화해에 있다는 취지에서, 피해자 측의 진술과 증거를 많이 반영했던 전 안병욱 위원장에 비해서, 이영조 위원장은 진실규명의 전제조건으로 불법성을 강조했고, 범죄행위의 불법성 요건으로 확실한 증거를 요구하는 경향이 강했다."
- 지난 60년 동안 유족과 희생자들이 말 못할 고통을 받은 것을 생각하면 손해배상 액수로써 가구당 300만 원은 너무 적은 것 같은데 이번 소송이 그냥 상징적인 의미의 소송이라서 그런 것인가?"(내가)생각하기로 소송에서 청구하는 액수(소가)에 따라 소송비용이 올라가는데, 월미도 유족들이 경제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그 법적책임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상징적 의미의 액수만 청구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재판의 진행을 봐가면서 추후에 청구액수를 올릴 것으로 본다."
- 진실위 미군사건 담당조사관 입장에서 이번 월미도 사건을 포함해 미군관련 사건에 대해 이명박 정부와 송영길 인천시장에게 건의하고 싶은 사항이 있다면?"월미도는 개항시기 한국에 영향을 미치려던 열강의 각축장이었다. 미국이 석유회사, 러시아, 일본이 석탄창고 등을 두었고, 러일전쟁에서는 그 앞 바다에서 해전이 있었다. 한국전쟁 시기에 월미도는 역사의 운명을 바꾸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었다. 그 위치로 무고한 월미도 주민들이 폭격을 당했고, 살던 고향에서 쫓겨나 60년 넘게 귀향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시기 무고한 민간인 희생자를 추모하고 그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상징적 공간으로 적합하다. 주민들에게 귀향의 기회를 제공하고, 역사적 상징성이 뛰어난 월미도 역시 그 지리적 역사적 특성에 맞게 발전시키는 방안을 강구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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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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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길 시장, 무고한 월미도 주민들의 죽음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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