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15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익대학교 앞에서 열린 '홍대 분회 집단 해고 철회와 1만인 선언 결의 대회'에 참석한 배우 김여진이 지지발언을 하고 있다. (자료 사진)
유성호
1991년 집회에 나갔다가 '맞아 죽은' 동갑내기 남학생(강경대 열사) 추모식에 참석한 이후 '운동'만 했던 대학 시절. "너무 힘들어" 운동을 그만두고 우연히 한 연극을 보게 된 후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사랑에 빠져" '연극'만 했던 20대 중반. 주인공으로 스크린에 데뷔해 칭찬도 많이 받고 상도 많이 받았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안 떠서" 괴로워했던 20대 후반~30대 중반. 그리고 인도적 구호활동과 홍익대 청소노동자 문제에 그야말로 "꽂혀 있는" 지금까지.
20~30대를 대상으로 한 이날 강연에서는 김여진씨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고 있고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지만, 경제적인 여건 때문에 그만두고 싶을 때가 있다"는 한 청년의 질문에 배우 김여진씨는 이렇게 말했다.
"이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연봉 100만 원이면 착취 아니냐. 맞다. 말도 안 된다."앞서 김씨는 연극을 하던 시절을 떠올리며 "연봉 100만 원을 받으며 지하철 탈 돈이 없어서 대학로에서 신촌까지 걸어 다니고, 밥도 못 먹을 때도 있었지만 행복했다. 힘들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이걸(연극을) 못하는 게 괴롭지"라고 말한 바 있다.
김씨는 "많은 청년들이 '꿈을 위해서는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 가난이라는 것도 수준이 있는 건데'라는 고민을 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을 구별해야 한다"고 말을 이어갔다.
"먼저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비정규직으로 갈 수밖에 없고 안전망도 없다. 단호하게 저항해야 한다.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을, 그리고 후손을 위해서.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저는 그 운동이 발랄하고 창의적인 방법이었으면 좋겠다."
김씨는 이어 "부당함에 저항하되 그 사회구조적인 문제가 스스로에게 변명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난 너무 불행해', '내 불행은 세상의 탓이야'라고 했을 때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고민을 한다. 글을 쓸 것인가. 사회가 말하는 안정된 직업을 살 것인가. 그런데 우리나라에 안정된 직업? 8%밖에 안 된단다. 요즘에는 그 어떤 직업을 택하더라도 다시 경쟁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내가 고흐처럼 천재라고 하자. 천재가 다른 게 아니라 그 일 아니면 안 되는 거. 죽는 거. 여기에는 선택이고 뭐고가 없다. 문제는 어중간할 때. 그럴 땐 선택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를 선택했을 때는 다른 건 깨끗하게 포기해야 한다. 저 역시 그랬다. 연극을 하겠다고 선택했을 때 가난하기로 한 거다. 그거 나쁘지 않다. 죽기밖에 더하겠나. 어차피 죽는데,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는 게 낫지 않나."김씨는 다른 방법도 제시했다.
"또 하나는 안정된 직장을 갖는 거다. 먹고사는 거 하면서 하루에 한 시간만 하고 싶은 걸 해라. 이건 두 가지 중에 하나 선택하는 게 아니다. 시간을 어떻게 배분하느냐다. 대신 하루도 안 빠지고 해야 한다. 그래야 작가가 될 수 있다. 매일매일 해라. 그러면 도가 튼다. 자기만의 뭔가가 생긴다. 대가는 못될지 몰라도 꽤 괜찮은 삶을 살 수 있을 거다."김씨는 "가장 나쁜 건 세상 탓 하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고민만 하고 앉아 있는 것"이라며 "만약에 재능이 없다고 해도 좋아하는 것 이상의 재능은 없기 때문에 일단 해 보라"고 조언했다.
"마구잡이로 의견 내고 마구잡이로 막 하는 날라리들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