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서운 꽃샘추위에도 3일 진행된 투쟁문화제.<사진제공:대우자판지회>
한만송
농성장에서 만난 강성필(44) 조합원은 "아내가 이번에는 후회 없이 끝까지 싸우다 돌아오라고 했다"며 투쟁 의지를 보였다.
강씨는 대학 졸업 후 1993년 8월 과거 '대우맨'으로 입사했다. 당시 대우그룹은 신입 사원 대부분을 대우차 판매 영업사원으로 훈련시켰다. 3년 동안 차량 90대를 판매한 후에야 대우의 자동차, 조선, 중공업, 무역 등으로 발령을 받았다. 강씨는 자신의 세일즈맨 소질을 발견하고 대우차 판매사원의 길을 걸었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옛 대우의 영광을 만들기도 했다.
"대우차가 잘 나갈 때는 제주도 시장의 40%까지 대우차가 차지했다. 지금은 6~7%로 추락했다. 제주 사회는 인맥이다. 그렇다 보니 대우차 브랜드보다 인간 강성필이 브랜드였다. 내가 친구에게 내 차 안 사면 '친구도 아니다'라고 그랬다. 열심히 일했는데, 회사는 일하는 우리들의 근로조건을 열악하게 만들더니 차 판매 전문회사가 차 팔 생각은 안 하고 건설에 투자해 망했다. 열심히 차 판 우리가 무슨 죄냐." 강씨는 설 명절 때 고향 풍습이 마음에 걸려 잠시 제주도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계속 농성하고 있다.
"오늘 아침에 부평 본사 옆 신축 공사 현장에 찾아갔다. 현장 소장님에게 잡부라도 시켜달라고 부탁했다. 생활비도 못 준 지 벌써 몇 개월이 됐다. 하루 일당이 5만 원인데, 절반은 조합에 내고 절반은 생활비로 쓸 생각이었다. 대장(=김진필 지회장)에게 허락받고 갔다 왔는데, (현장 소장 쪽에서) 답이 없다" 그는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강씨는 회사 입사 후 노조에 바로 가입하지는 않았다. 2001년 대우자판 경영진이 SR제도(=실적에 따른 변동급 중심 영업직, 고정급 30%+판매수당 70%)를 강요했다고 한다. 그 이전까지는 CM제도(=고정급 중심 영업직, 고정급 70%+판매수당 30%)였으나, 사측이 경영 효율성만을 따져 SR제도를 강요해 결국 노조에 가입했단다.
마지막으로 강씨는 '워크아웃 상태에서 정리해고 반대 투쟁이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니냐는 물음에 "난 평조합원이다. 지도부를 믿고 쫓아가는 것이다. 사측은 불법 점거라며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고 매일 방송한다. 퇴직금도 들어오지 않고, 4대 보험은 어떻게 되는지 걱정이다"라고 말한 뒤 "산업은행은 영안모자에 물려있는 거 같고, 정치권도 로비 많이 받아서인지 대우자판 문제는 거론도 되지 않는다. 우리들이 언제 사람취급 제대로 받았냐?"고 하소연했다.
농성을 하고 있는 이들은 1년이 넘는 동안 임금 1500여만 원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보니 최소한의 생활조차 영위하기 어려운 처지다. 특히 농성자 대부분이 40~50대라 학자금, 전세 대출금 등으로 지출이 막대해 가정경제가 파탄 나고 있는 실정이다.
"노조 말을 조금이라도 들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