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과 현실은 하늘과 땅국정원은 직접 '감수'한 <아테나>(위) 같은 첩보드라마를 통해 정보기관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높였으나 롯데호텔 절도미수 사건으로 '아, 티나'로 패러디한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SBS <아테나: 전쟁의여신>
"SBS TV드라마 <아테나>에서 대테러정보기관이 테러단에 의해 보안이 뚫리거나 점거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픽션이지만 이건 (정보기관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픽션이 아닌 현실에서 국가정보기관 요원들이 외국 특사단의 호텔방에 침입했다가 '절도미수'로 발각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전 국정원 1급 간부 A씨)"롯데호텔 사건은 국정원 지휘부 자체가 인텔리전스(정보)와 공작의 ABC도 모르는 사람들이기에 벌어진 일이다. 국내에서 I.O(Intelligence Officer)나 조정관하던 사람들이 공작을 하니 마구잡이로 호텔방에 들어간 것이다. 공작 전문가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비유컨대 노상에서 마스터베이션(자위행위)을 하다가 들통난 것이다."(전 국정원 1급 간부 B씨)
"롯데호텔 사건은 노상에서 마스터베이션 하다 들통난 것"지난 2월 21일 국정원 3차장실 산하 산업보안단 소속 직원들의 인도네시아 특사단 호텔방 침입 및 절도미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 전직 국정원 간부들에게 '소감'을 묻자 나온 첫 일성들이다.
국정원 간부 A씨와 B씨는 각각 국내 파트와 해외 파트에서 잔뼈가 굵은 뒤에 부서장을 지냈다. 특히 B씨는 중동 등지에서 수많은 해외공작에 참여한 '스페셜리스트'(전문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상에서 마스터베이션 하다가 들통난 것"이라는 혹평은 오는 6월 10일로 창립 50주년이 된 국정원에 뼈아픈 지적이다.
정보기관의 전통적 업무영역은 정보, 수사, 공작, 보안-방첩의 4대 분야다. 여기에 국제테러가 중대한 안보위협으로 등장하면서 '대테러' 업무를 포함해 5대 분야로 나누기도 한다. 이번 호텔방 침입 사건의 경우, 가장 큰 문제점은 이런 공작을 계획한 착상부터가 정보 및 공작 활동의 ABC를 어겼다는 점이다.
우선 정보-공작활동에선 그 행위(절도) 자체의 성공도 중요하지만 '뒷마무리'와 수습(보안 유지)을 어떻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일반적으로 공작은 경제적 비용은 적은 반면에 정치적 비용은 매우 크므로 성공의 이점이 크지만 실패와 노출의 대가 또한 크기 때문이다.
득보다 실이 큰 대표적 사례는 65년 이스라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가 모로코 정부를 돕기 위해 모로코 국왕의 정적이었던 메흐디 벤 바르카(Mehdi Ben Barka)를 제네바에서 파리로 유인해 납치한 공작이다. 이후 바르카의 시신을 염산에 녹이거나 시멘트에 암매장됐다는 전직 모로코 정보기관 요원들의 증언들이 잇따랐다(79년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 실종 사건의 경우도 중정 요원들이 김씨를 프랑스 파리에서 납치해 양계장 사료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 비밀공작은 성공리에 끝났으나 그 후 프랑스 경찰의 추적으로 보안이 누설돼 프랑스 정보기관인 대외보안총국(DGSE) 개입설이 유포되어 큰 정치 문제로 비화됐다. 결국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스라엘의 강력한 지원자였던 드골 대통령의 분노를 사 프랑스 정보기관의 개편 및 모사드 파리 거점(유럽지역 본부) 폐쇄 명령, 프랑스-이스라엘의 관계 악화, 이세르 하렐 모사드 부장의 사임 등으로 비화됐다.
공작에선 행위 그 자체의 성공보다 '뒷마무리'가 더 중요이번 사건에서는 정보-공작의 상대가 이명박 대통령과 친분이 돈독한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특사단이라는 점에서 성공이 100% 보장될 경우에만 추진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번 경우 비용 대 편익 분석에서, 득보다 실이 압도적으로 컸다. 더구나 발단이 된 고등훈련기(T-50) 사업에 대한 특사단 협상전략은 국방부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온 사안이다. 따라서 국정원으로서는 '득'이 전무한 상황이므로 착수하지 않는 것이 공작의 ABC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 국정원의 무능이 드러난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5월에는 국정원 직원이 국정원 소유 차량을 이용해 프랭크 라 뤼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 일행을 캠코더로 촬영하며 미행하다가 오히려 차량 번호판이 사진에 찍혀 국제 망신을 당했다. 또 6월에는 리비아 주재 외교관으로 활동해온 국정원 직원이 방위산업 수출을 위해 리비아 무기목록 같은 군사정보와 현지 북한 근로자 관련 정보를 수집하다가 체포되어 '내정 간섭'을 이유로 추방된 바 있다.
이 사건은 대통령의 '형님'이 노구를 이끌고 리비아에 날아가 무마했지만 무기는 비밀이 될 수 없다는 점에서 아마추어리즘의 한 단면을 보여준 것으로 지적된다. <제인연감>(Jane's annual report)에는 북한제 권총에서 미제 군함까지 세계에서 생산되는 모든 무기가 사진과 함께 종류별로 상세히 나와 있는데 쓸데없는 수집활동으로 오히려 '국익'을 손상한 셈이다.
이런 일들이 벌어진 1차적 원인은 지나치게 잦은 무리한 인사와 '기능 배치'의 실패에서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