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속 고려태조 왕건이 세운 안양사 7층 전탑(塼塔)이 남쪽 방향으로 쓰러진 형태로 벽돌-기와-벽돌 순으로 쌓여있다
최병렬
신라 중초사 - 고려 안양사 - 김중업 설계 근대건축물 한자리현재까지 2차에 걸친 발굴 작업 결과 중문지, 금당지, 강당지, 승방지, 회랑지 등 안양사 건물지와 태조 왕건이 조성하고 최영 장군이 탑안에서 수도했다는 기록이 있는 전탑지가 확인되고, 안양사 명문 기와 와편과 각종 문양이 새겨진 와당, 전돌류, 탑의 도자기 연봉과 토기류가 수습되는 등 안양사터 실체가 천년여 만에 세상 밖으로 드러났다.
이에 유유 부지는 신라 제42대 흥덕왕(興德王) 2년인 827년에 중초사(中初寺), 고려 태조 왕건(877~943)이 900년에 경기서남부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의 안양사를 조성했으며, 그 절터 위에 1959년 건축가 김중업 설계의 제약공장이 지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신라시대 중초사, 고려시대 안양사, 그 절터 위에 김중업 선생이 설계한 근대건축물이 자리 잡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 일이다"며 "천년의 역사를 한 자리에서 고스란히 볼 수 있다는 역사적으로도 보기 드문 경우다"고 감탄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 전문위원들이 유유 부지 현장을 방문해 발굴 결과를 확인한 문화재청은 지난 1월 21일 안양시에 통보한 현상변경심의결과를 통해 '일반 공장건물이 김중업 설계 건물을 가리고 건물 하단의 매장문화재 발굴을 위해 철거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다만 건축가 김중업 선생 설계로 1959년에 지어진 사무동, 보일러실, 본관 공장동, 수의실 등 4개동은 원형 보존하고, 추후 지어진 일반 건물 중 창고동 등 2개동만 남기도록 했다.
이는 김중업 설계 건축물 중 일부 건물 하단에 안양사 절터가 존재하고 있음에도 김종업 건축물이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 가치가 있음을 높게 평가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