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철씨.
신기철
- 진실위에서 금정굴사건보고서를 2007년에 냈는데 이번에 단행본 책을 따로 발간하게 된 동기나 이유가 있나?"금정굴사건 보고서는 민간인 학살사건으로서는 나주 동박굴재 사건에 이어 두 번째 것이었다. 당시 위원회 활동의 성과가 뭔지 보여 달라는 독촉이 심하던 때여서 서두른 점이 있었고, 그래서 부족한 점이 많았다. 보고서의 분량 때문에 내가 담고 싶었던 내용 중 많은 부분이 누락되기도 했다. 보고서를 낸 이후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도 담아내고 싶었다. 단행본으로 책을 따로 내게 된 것은 진실화해위원회 활동의 후속작업으로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신기철씨 약력 |
1983년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1990년 ~ 1997년 서울 남부금속 노동조합 1997년 ~ 2003년 고양시민회 2004년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2006년 ~ 2010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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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쓰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금정굴 사건이 저질러지게 된 전국적 맥락 또는 경기도 단위의 맥락이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국내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도 찾을 수 없었다. 고양지역에서도 고양경찰서 외에는 경찰조직이 어떻게 개입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 사례를 참고로 몇 가지 시도를 하긴 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객관적 사실의 열거 외에 별다른 해석을 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욕심이 지나쳤던 것이다."
- 금정굴사건에 대해선 기존에 나온 몇몇 글이 있지만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유형으로는 처음 정리된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의의와 주요 내용을 소개하면?"이 책을 통해 국가가 사건 발생 직후부터 고양 금정굴 사건을 알고 있으면서 적극적으로 숨겨왔다는 것을 밝히고자 했다. 검찰 스스로가 200여 명의 무고한 주민들이 학살당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도 전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60년이 넘도록 직간접으로 희생자들의 가족들을 괴롭혔다. 이건 파렴치의 수준을 넘어서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래서는 국가가 조직폭력배 집단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사회가 이 문제에 대해 아직도 좌우 갈등의 문제로 바라보는 편견을 바로 잡고자 했다. 학살에 가담한 고양경찰서 의용경찰대원 상당수가 부역자였다. 물론 이들도 전쟁 전에는 대한청년단원, 대동청년단원, 국민보도연맹원들이었다. 반면 희생자들 역시 대한청년단원, 호국군, 마을 반장, 마을 유지들이었다.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전쟁 전에는 모두 한 마을 주민들이었다. 과연 누가 좌익이고 누가 우익이었다는 말인가? 서슬 퍼런 남과 북의 국가권력 앞에선 모두 나약한 개인들이었을 뿐이었다.
이 책은 '부역혐의 희생사건'을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다른 유형의 학살사건도 마찬가지이지만 입에 담기조차 꺼려했던 사건들이다 보니 희생 시기나 희생경위처럼 진실의 기본이 되는 '객관적 사실'조차도 정확하질 않다. '망각'이라는 일종의 자기방어인 셈이다. '부역혐의 희생사건'의 '객관적 사실'을 명확히 한 후에야, 전국에 이와 같은 일이 거의 동시에 벌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고양금정굴 사건을 조금 더 자세히 다루었을 뿐이며, 이 정도의 내용은 전국 어느 시·군·구에서도 확인되는 사건이다. 북한 사회도 마찬가지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사회는 아직도 이에 대해 말하지 못하고 있는 곳이 아주 많이 있다. 이것이 이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 중 하나다."
- 1995년 10월 유족들의 힘으로 금정굴을 발굴했고, 2007년 진실위에서 민간인들이 억울하게 국가폭력에 의해 학살당했다고 규명했다. 그 후 가해자들의 반성이나 고백이 있었나?"2008년 경찰청장 명의의 유감 표명은 있었다. 2007년 진실규명 당시 태극단원의 증언이 진실규명에 크게 도움이 되었지만 본인들의 행위에 대해선 모든 진실을 말하진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희생자 유골을 안치하는 데 반대하는 것을 보면 결코 반성하는 것 같지는 않다. 이 사건에 대한 위령사업을 공약으로 내걸어 당선된 고양시장도 별다른 결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신들의 편견을 넘어서려고도, 더 이상 진실을 알려고도 하질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