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만 6.15경남본부 상임대표.
윤성효
"우리 근현대사는 항일청산으로 시작된 역사였다. 항일운동을 했던 사람들을 청산했던 것이다. 식민지로 있다가 해방이나 독립하고 나면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이 외세에 부역했던 사람들을 처단하는 일이고, 독립운동했던 사람들은 존중을 받아야 할 것인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김영만 6․15경남본부 상임대표는 3․1절을 맞아 창원노동회관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제잔재 청산'을 강조했다. 김 상임대표는 열린사회희망연대 의장과 Corea평화연대 대표 등을 지냈다.
그는 옛 마산시가 친일예술인들의 기념사업을 벌일 때 온 몸을 던져 막아냈다. 옛 마산시가 친일파 조두남의 기념관을 지으려 하자 행사장에서 밀가루를 던져 구속되기도 했다. 마산시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조두남 기념관'이란 이름을 버리고 '마산음악관'으로 바뀌었다.
김영만 대표는 2005년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주는 '임종국상'(사회운동부문)을 수상했고, 지난해 부마민주항쟁 31주년을 맞아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에서 주는 '민주시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일제․친일잔재' 청산에 앞장 서온 김 대표가 노동자들을 모아 놓고 강연한 것이다.
"유럽이 복지가 잘된 까닭은?"우리가 친일잔재를 청산하지 못했던 역사부터 지적했다. 유럽과 비교하기도 했다.
"해방 뒤 서울 경찰서 10곳 중 9곳의 서장이 일제 앞장이 한 경찰이었고 1곳은 일제강점기 군수 출신이었다. 경찰은 거의 대부분 일제강점기 때 경찰이었거나 정보 계통에 있었던 사란들이었다. 우리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그랬다. 대한민국 역사는 '항일청산'부터 시작되었다고 봐야 하는 거 아니냐. 독일 나치의 식민지 경험을 했던 유럽은 어땠나. 프랑스와 덴마크, 벨기에, 노르웨이는 인구 10만 명당 370~650여 명씩 처단했던 것이다." 김 대표는 "지금 유럽이 민주화가 정착되고 복지가 잘 된 것은 당시 나치 부역자들에 대한 처단을 잘했던 것이 기반이 되었다고 분석하는 학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한민국은 몰염치한 사람들이 지배했다"며 "친일을 했음에도 하나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당당하게 주도세력으로 살아왔다. 그들이 국가를 주도하면서 선악이 전도된 것이고, 몰상식한 사회가 됐던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가 겪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김 대표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월남전 참전 용사들 중에는 고엽제로 병을 앓기도 하는데, 그도 몸이 아팠을 때 부산의 한 대형병원에서 진찰을 받았던 적이 있다. 참여정부 시절 일이다.
"병원 큰 홀에 많은 참전 용사들이 모였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떠들기도 했다. 그러는 속에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연설하듯 했다. 그는 '노무현 XXX. 고엽제 환자한테 지급할 수 있는 금액을 정해 놓았기에 의사들이 금액에 맞추다 보니 판정을 그 금액에 맞게 해준다'고 했다. 그 옆에 있는 사람들도 '노무현 XXX'라고 덩달아 소리쳤다.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성질이 나왔다. '박정희 XXX'라고 외쳤다. 그러면서 '박정희 XXX는 우리를 월남전에 보내 놓고 죽을 때까지 한번도 우리를 찾지 않았다'고, '전두환 XXX는 부하들을 데리고 월남전에 갔으면서도 한번도 불러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자 순간 조용하더라. 옆에 있던 한 사람이 '말을 듣고 보니 나쁜 놈들이네'라고 하더라."김영만 대표는 "고엽제는 민주화 이후 사회문제가 되었다. 김영삼정권 때 나왔고, 김대중정권에 이어 노무현정권 때 가장 많이 배려해 주었다"며 "요즘도 파병용사들이 기념식을 하는데 박근혜 전 대표가 나와서 기념사를 하면, 늙은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자기를 챙겨주는 사람을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돌보지 않고 내팽개쳤던 사람을 존경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이런 게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나. 친일청산이 안돼서 그렇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암담하다. 몰상식한 사회라서 그렇다. 그런 사람들이 계속 기득권을 유지해 왔다. 신자유주의도 그렇다. 무한경쟁을 하면 어떻게 되나. 기득권만 쥔 사람들은 기득권만 쥐게 될 것이다. 시발점이 잘못 됐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