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5월 광우병 위험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서울 청계광장에서 재협상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남소연
# 장면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008년 봄 서울 광화문에는 날마다 <헌법1조>가 울려 퍼졌다. 어스름 저녁이 몰려오면 남녀노소 할 것이 누구나 종이컵에 촛불을 담았고, 목이 터져라 이 노래를 불렀다. 수십만 인파는 촛불로 서울도심을 뒤덮었고, 물대포에 온몸이 젖어도 물러서지 않았다.
국회의원도 전직 장관도 몽둥이와 연행은 피할 길이 없었다. 닭장차에 실려 경찰서로 끌려간 국회의원도 있었다. 국민은 분노했지만 별달리 할 것은 없었다. 거리정치는 직접민주주의로 발전될 수 없었고, 결국 '영향의 정치' 수준을 넘지 못했다. MB집권 2개월 만에 벌어진 이 살풍경. 국민은 어금니를 꽉 문 채 일상으로 돌아갔다.
# 장면2. "여태 지하에서 촬영하느라 멘션 확인 못하고 있다가 이제 막 꼼꼼히 다 읽었어요! (중략) 일찍 투표한 건 새벽부터 일이 있어서였어요. 여튼 기사 보고 투표하신 분이 있다니 기쁩니다! 소중한 권리 행사한 하루가 지나고 있네요^^" (탤런트 박진희)"투표 안하고 놀러가겠다는 사람들에게 썩소를 날리며 귓속말로 한 마디만 해주고 싶다. 투표는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겁니다. 왜 무려 4년씩이나 기다려야 되찾을 수 있는 당신의 주권을 한순간에 쓰레기통 속에 내던져 버리시나요?" (소설가 이외수) "아하하하하하하! 투표하는 날 입으려고 준비해둔 티셔츠입고(온몸으로 찍었어! 온몸으로!) 내가 찍은 분으로 하여금 이 세상 스몰사이즈하게나마 새롭게 태어났으면 하는 마음 듬뿍 담아 안경낑겨주고 투표완~료~우! ㅋㅋㅋ"(방송인 노홍철)2010년 6월 2일 트위터가 불났다. 선두에 선 건 유명 연예인이었다. 그들은 투표소에서 인증샷을 찍고 투표독려 멘션을 날렸다. 그 탓일까. 젊은 층 투표참여가 늘었고, 투표율은 지방선거 역사상 15년 만의 최고치 54.5%를 기록했다. 정치평론가들은 이를 '종이짱돌의 힘'이라고 평가했다. '반MB야권연대' 연합정치의 힘도 작용했다. 완벽한 승리는 아니었지만 전반적으로 야권이 당선되는 쾌거를 얻었다.
6·2 지방선거 이후로 정치권에 '좌클릭' 바람이 불고 정책전환도 꾀하는 등 여러 변화가 수반되고 있지만, 국민은 고개를 갸웃한다. 아! 그래, 무릎을 탁 칠만한 새로운 정치주체와 정치흐름이 있는 것은 아니므로.
# 장면 3. "내가 꿈꾸는 나라요? 합리와 상식, 공정이 회복된 나라. 지금은 불합리와 몰상식, 불공정하지 않나요? 후후. 진보의 가치가 제도화 된 나라!" (조국 서울대 교수) "민주공화국이요! 자유롭고 동등한 사람들의 시민공동체? 꼭 진보주의자만 있는 게 아니라 합리적 보수주의자들도 모두 행복한, 상식에 기초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누구나 '내가 꿈꾸는 나라'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소수 특권층의 나라일 뿐이다. 2008년 수많은 촛불이 거리로 쏟아져나와 후퇴한 민주주의를 성토했지만 돌아온 건 물대포와 사회적 억압과 소송전이었다.
원칙과 상식, 공정한 사회를 요구하는 국민적 염원.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는데 새로운 가치가 살아있는 새로운 국가건설(Nation building)은 안 되는 걸까. 먼저 자각한 시민운동가들과 학자들이 나섰다. 촛불에서 드러난 다양한 국민적 요구를 담을 '새 그릇'을 만들겠다는 게다. 시민의 힘으로 시민이 원하는 시민의 나라를 건설하자는 것.
십수년 시민운동해온 활동가들이 시민정치운동 전선에 선다6·2 지방선거 이후 다양한 시민정치운동이 뜨고 있다. 상층 정치협상을 핵심으로 하는 '희망과 대안'부터 야권단일정당운동을 벌이는 '국민의 명령 유쾌한 백만민란', 진보통합을 위한 시민회의 등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목표와 과제를 달리하는 다양한 시민정치운동단체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가운데 새로운 가치와 비전에 입각한 시민국가 건설(Nation building)과 새로운 정치세력 형성을 위한 시민정치운동단체가 출범한다. 시민정치행동 '내가 꿈꾸는 나라(@mycountry21)'가 그것.
촛불이후 한국 사회에 새로운 대중정치조직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활동가그룹과 전문가그룹이 우선 동을 떴다. 십수년간 시민운동에 헌신해온 전직 시민단체 사무처장들과 학자들이 '준비'를 시작한 게다.
남윤인순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가 준비위원장을 맡았고, 조국 서울대 교수, 김기식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운영위원장, 천준호 KYC(한국청년연합) 대표, 정치평론가 김헌태씨, 안병진 경희사이버대 교수, 고원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등 30여 명이 이 운동에 동참했다.
이들은 지난 1월 5일 시민정치운동 기획회의를 열고 세 번의 준비위원회 회의를 거쳐 기획과 정책, 조직으로 나눠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조직화 작업에 나섰다. 2월 23일엔 전국 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지역간담회를 열었고, 이후 전국 순회간담회를 통한 전국조직으로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2월 26일 전주를 시작으로 부산, 대구, 광주, 강원을 돌고, 3월 29일엔 정식 발족식도 열 예정이다. 발족식엔 서울과 지역을 포괄하는 활동가 그룹, 지식인을 비롯한 각계 인사, 문화예술인, 지방정치인 등까지 참여의 폭을 열어놓고 있다.
4월 초엔 시민정치학교도 열 예정이며, 신진욱 중앙대 교수, 안병진 교수, 고원 교수 등이 강사로 참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