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참여정부 시절에는 구제역을 포함한 가축 전염병 방역을 국가위기관리 차원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 국가안보종합상황실에서 관리했다. 사진은 지난 2007년 8월 8일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안전보장회의를 개최해 '제2차 남북정상회담' 개최의 건을 심의ㆍ의결하는 장면
청와대 제공
지난 참여정부 시절에는 구제역을 포함한 가축 전염병 방역을 국가위기관리 차원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산하 국가안보종합상황실에서 관리했다. 또 상황별로 세부적 대처계획까지 규정한 위기대응 매뉴얼에 따라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었고, 현장 상황이 실시간으로 청와대 전자 상황판에 뜨니 보고 지체나 늑장 대처가 있을 수 없었다.
이런 배경에는 외교안보국방 등 전통적 개념의 안보뿐만 아니라 자연 재해나 국가 핵심기반 마비 사태까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모든 분야를 다 안보 영역에 집어넣은 포괄적 안보개념을 국가안보 개념으로 설정한 참여정부의 국정 철학이 있었다.
"참여정부 출범 한 달 전쯤인 2003년 1월 15일 소위 인터넷 대란이라고 하는 사이버 마비사태가 혜화전화국을 기점으로 벌어진 적이 있었다. 그때 금융, 통신, 항공권 예약 이런 것들이 올스톱 되어 나라 기간망이 일시에 마비 상태에 들어갔다. 그리고 2월 18일, 정부 출범 약 1주일 전에는 대구 지하철에서 180여 명의 무고한 시민이 화재로 사망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참여정부 출범 전에 연이어 일어난 이 두 가지 사건을 계기로 우리 정부 내에는 새로운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아주 광범위한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철학은 국가위기에 대응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으로 이어졌다. 시스템은 청와대 지하벙커에 설치된 NSC 위기관리센터와 국가위기상황에 대응한 매뉴얼로 구체화 되었다.
3공화국 시절 북한의 공격에 대비해 마련된 청와대 방공호에는 16억 원의 예산을 들여 국내 주요 기관들의 상황 정보를 종합하는 종합상황실이 설치됐다. 전면 벽에 설치된 대형 전자 상황판엔 국내 27개 주요 기관으로부터전송되는 그래픽 상황 정보가 실시간으로 떴다. 육·해·공군 작전사령부와 경찰청, 소방본부, 산림청, 한국전력 상황실 등에서 보는 정보가 곧바로 청와대 상황실로 연결된 것이다. NLL지역의 남북한 해군 함정의 위치와 원자력 발전소 터빈의 작동상태, 서울시내 CCTV까지 청와대에서 한눈에 파악이 가능했다.
또 대통령령으로 국가위기관리 기본지침이 만들어졌다. 2005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국가위기를 모두 33개로 유형화해 그에 따른 표준 매뉴얼 33권을 작성했고 정부 272개 부처와 관계된 280여 권의 위기대응 실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위기 현장에 투입되는 기관과 조직들이 현장에서 해야 될 세부적 조치들을 일일이 규정한 현장조치 매뉴얼을 만들었는데, 모두 2400여 권에 달했다. 그 이유에 대해 류 전 차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과거 삼풍 백화점이나 성수대교 붕괴 사고를 돌아보면 정부의 대응은 한 마디로 우왕좌왕, 중복, 공백이었다. 어떤 것은 꼭 해야 하는데 하지 않고, 어떤 것은 서로 하겠다고 달려들었다. 이런 혼란의 근본 원인이 부처 간의 역할과 기능이 정확하게 규정이 되어 있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정부조직법에 환경부는 뭐한다, 보건복지부는 뭐한다 이런 식으로 느슨하게만 규정을 하고 있어서 특정위기에 대해서는 대처가 미흡할 수 밖에 없었다. 예를 들어 보자. 해외에서 우리 국민이 피살되면 일단 주무부처는 외교부다. 하지만 시신 처리에 관한 것은 보건복지부 소관이고, 국내로 시신을 운구하는 책임은 행정자치부가 맡게 되어 있다. 이렇게 되니 책임이 많이 따를 것 같고 비판이 따를 것 같으면 서로 가능하면 안 하려 하고, 뭔가 좀 면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으면 서로 하겠다고 나섰던 것이 정부 수립 후 60년간 반복된 현상이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명확하게 구분을 해놓은 것이다. 또 매뉴얼에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안 하면 누가 안 했는지 왜 안 했는지, 무엇을 안 했는지 금방 드러나게 된다. 감사원까지 동원할 필요가 없이 그대로 바로 귀책사유가 나오기 때문에 공무원들이 허술하게 취급하지 않는 효과가 생겼다." 매뉴얼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훈련을 통해 적용해보고 문제점이 발견되면 보완하게끔 했다.
"매뉴얼만 만든다고 위기관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담당 실무자들에게 매뉴얼을 숙달 시키고, 또 실제 훈련을 통해서 나타나는 문제점들을 찾아내서 2년마다 매뉴얼을 개정하게끔 했다. 어떤 국가위기든 한 개의 위기에 평균적으로 9개의 정부부처가 관여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9개 부처가 함께 모여서 훈련을 했다. 2007년도에는 모두 27개 국가 위기에 대해 위기 대응 통합 연습을 했다."참여정부의 경험과 제도 무시한 MB 정부
하지만 출범 당시 작은 정부와 효율성, 실용주의를 강조했던 이명박 정부는 참여정부의 경험과 제도를 깡그리 무시했다. 외교·안보 분야와 관련된 전통적 국가위기관리 기능은 청와대에 남겨 두었지만 재난관리 분야는 행정안전부로 다시 넘긴 것이다. 이러다보니 구제역을 막기 위한 정부 부처 간 유기적 협조가 어려웠다.
"이 정부는 안보, 통일, 군사, 외교 분야만 남기고 나머지 재난 분야, 핵심 기반 분야는 각 부처로 다시 돌렸다. 부처로 돌려놓으면 어떻게 되는가? 한마디로 정부 차원의 위기관리를 할 수가 없다. 구제역도 마찬가지다. 행자부에서 구제역과 관련해서 뭘 할 수가 있는가? 농림부 주관 사항인데, 행자부에서 무슨 지시가 되겠는가? 또 행자부에서 말한다고 해서 전문 부처인 농림부가 말을 듣는가? 농림부가 병력 요청을 국방부에 해도 국방부가 말을 들었나?" 지난 3년간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황강댐 방류 사건,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구제역 대란 등 국가 위기 상황에서 번번이 낭패를 당해야 했다. 부실한 위기관리시스템에 대한 비판은 그때마다 따라다녔고 땜질식 처방이 이어졌다. 위기정보상황팀으로 출발한 이 정부의 청와대 위기관리 체제는 이후 위기상황센터→ 국가위기관리센터→ 국가위기관리실 등으로 3번이나 그 모양을 바꿨다. 수석비서관실급의 국가위기관리실을 설치토록 한 지난 해 12월의 마지막 개편은 참여정부 당시의 NSC 사무처로 도로 돌아갔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날 류 전 차장은 "모든 형태의 위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적극 보호하기 위한 국가 위기관리는 참여정부에서 시작해서 참여정부에서 끝났다"는 말로 강의를 마쳤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댓글
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공유하기
"참여정부 경험과 제도 무시가 구제역 대란 불러"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