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 엑스폴리오
이상기
'엘 엑스폴리오'의 주인공은 빨간 옷을 입은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조금은 의연한 모습으로 그러나 조금은 불안한 눈빛으로 하늘을 응시한다. 색깔과 표정에서 그가 순교자가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스도 왼쪽에는 로마 병사가 무심한 표정으로 서 있고, 오른쪽에는 피부가 검은 폭도가 예수의 옷을 벗기려는 듯 어깨 위로 손을 올리고 있다.
이들 뒤로는 십자가에 못 박히는 예수를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의 표정이 가지각색이다. 또 사람들 사이로 창과 무기를 두드러지게 해 사태의 긴박성을 알린다. 그에 비해 그림의 오른쪽 아랫부분에는 십자가에 못을 박으려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왼쪽의 세 사람은 이러한 행위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예수의 최후를 보여주는 절박한 그림인데 이상하게도 평온하면서 엄숙하다. 이게 바로 엘 그레코의 예술적 스타일이고 특징이다.
성물실에는 예수의 사도를 그린 그레코의 그림이 가장 많다. 이들 그림은 모두 작은 크기로 사도만을 그린 일종의 초상화다. 이들 역시 검은 색과 흰색 그리고 붉은색의 대비를 통해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성물실에는 이들 그레코의 그림 외에 루벤스, 고야, 벨라스케스 등의 그림도 있다. 고야와 벨라스케스는 엘 그레코와 함께 에스파냐를 대표하는 근대화가다. 이들이 추구한 에스파냐 회화의 주지주의와 실험정신은 피카소, 미로, 달리 같은 현대화가에게로 이어진다.
성물실 천정에 있는 지오르다노의 프레스코화는 엘 그레코의 제단화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한 마디로 밝고 화려하다. 황금색의 밝은 색조를 바탕으로 천상에서 지상으로 한 줄기 빛이 내려온다. 이것은 하늘나라에서 일데폰소 성인에게 제의(祭衣)를 내려주는 모습이라고 한다. 지오르다노는 1692년부터 1702년까지 마드리드에서 에스파냐 궁정화가로 활동했으며, 그때 이 그림을 그렸다.
산토 토메 성당에서 만난 엘그레코의 최고 걸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