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덕수궁의 정문은 대한문이지만 예전에는 동문이었던 문이다.
최지혜
덕수궁은 원래 궁이 있던 자리는 아니다. 임진왜란이 나고 모든 궁이 불에 타버린 상태에서 선조가 돌아온 곳은 다름 아닌 장안에서 가장 큰 월산대군의 집이었다. 이곳을 임시 궁궐로 삼다가 광해군 때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이곳은 '경운궁'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후 조선 말기 아관파천을 갔던 고종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며 다시 궁궐로 사용됐다.
강대국들에 의한 압박에서 벗어나 자주적인 독립국을 만들고 싶었던 고종은 조선의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황제의 나라로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는 일제의 침략에 의해 좌절되고, 강압에 의해 왕위까지 순종에게 물려주게 되었다. '덕수궁'이라는 이름은 이때부터 붙여진 것으로 순종이 덕수궁을 떠나 창덕궁으로 옮겨가면서 고종의 장수를 빌며 이와 같은 이름을 지었다.
조선의 마지막 궁궐이자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현대와 고전미가 조화된 궁으로 유일한 덕수궁, 그곳에 새겨진 역사적 의미들을 새기며 걸어보자.
덕수궁으로 통하는 정문, '대한문'은 원래 '대안문'이라는 이름의 동문이었다. 경복궁의 광화문, 창덕궁의 돈화문, 경희궁의 홍화문처럼 모든 궁궐의 정문은 백성을 교화한다는 의미로 '화'자를 넣어 이름을 만들었다. 덕수궁의 정문 역시 '인화문'이라는 이름이었으며 정전의 정문인 중화문 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어졌다. 궁의 동쪽이 서울의 중심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동문이었던 대한문이 정문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