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나무하는 것'이 손해 보는 장사?

내 손으로 땀흘리며 사는 자급의 삶이 좋아

등록 2011.02.24 13:50수정 2011.02.24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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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안 받으면 그것도 한 두 번이지 여러 번 반복되다 보면 상대가 불성실해 보이나 보다. 분명 흔적이 남아 있을텐데 가타부타 연락조차 없으면 더 더욱. 


그런데 내 경우는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전화가 잘 안 터지는 곳에서 살다보니 전화 못 받는 때가 많고 더구나 일을 할 때는 전화벨이 울려도 받을 수가 없다. 괭이나 톱 등 일하던 연장을 내려놓고, 끼고 있던 장갑 벗고, 손 닦고 전화를 받아보면 기껏 한다는 소리가 메일 보냈으니 읽어보라든가, "전희식 고객님이시죠?" 라는 전화판매원 목소리가 나오기도 해서 아예 일할 때는 휴대폰을 들고 가지 않기 때문이다.

엊그제는 하루 종일 산에 오르내리면서 나무를 했는데 집에 와서 보니 핸드폰에 문자가 여럿 와 있었다. 문자를 다 읽지도 못했는데 문자를 한 친구한테서 전화가 삐리리 왔다. 산에서 나무했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나무 한 차에 얼마냐고 소리를 질렀다. 마치 자기가 나무 한 차 사줄 테니 전화나 꼬박꼬박 잘 받으라는 투다.

정말 그 말이라면 그렇게 못할 이유도 없다. 나무 한 차 하려면 며칠 걸린다. 이날도 지게를 지고 하루 종일 산을 헤매면서 해온 나무가 얼마 되지 않았다. 손바닥에 상처도 났고 손가락 끝도 좀 다쳤지만 내 1톤 트럭에 싣는다면 반의 반차도 안 될 양이다.

나무를 한 차 사줄듯하던 친구는 금방 말을 바꿔서 시골에 유행하는 화목보일러 그게 문제라고 트집을 잡았다. 너도나도 기름 비싸다고 화목보일러를 놓는데 그러다가 70년대처럼 온 산이 다 벌거숭이가 되면 어찌할 거냐는 걱정까지 했다. 대단한 산림경제 보호자처럼 들렸다.

나는 화목보일러도 없지만 간벌하고 남은 나무들을 주워 왔다고 해도 나무의 생리와 숲 가꾸기에 문외한인 친구는 나뭇가지 하나 꺾지 않는 게 중요한 산림보호라고 보는 모양이다.


하루 어디 공사판에라도 가서 품을 팔아 돈을 벌면 나무 한 트럭을 사고도 남을 것이다. 제재소에 가면 통나무를 켜고 남은 나무껍질 한 트럭에 4~5만 원이면 사니까 말이다. 나 같이 아궁이를 고집할 게 아니라 미련 없이 헐어내 버리고 보일러를 깔면 열효율이 좋아질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생활도 훨씬 편해지고.

그런데 어디까지 편해져야 하는지가 늘 애매하다. 앉으면 다리 뻗고 싶고 다리 뻗으면 눕고 싶은 게 사람 심리다. 더구나 편리를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고 보니 잠시라도 청정한 마음을 놓치면 넘어서는 안 될 경계를 휙 넘어버린다. 내 편리가 주변에 대한 약탈과 파괴로 이어진다. 효율성으로만 모든 것을 따지려 드는 것도 결국은 돈과 편리라는 두 가지 유혹 때문일 것이다.


나무를 하는 동안 나는 참으로 행복했다. 폐목 사이를 헤집고 팔뚝만한 나무토막을 찾아내는 집중. 쌀쌀한 날씨의 따사로운 햇살. 온 몸의 장기와 기관이 팽팽 돌아가는 왕성한 신진대사. 눈이 덜 녹은 계곡물에 목을 축이는 청량감. 산 기슭에 털퍼덕 주저앉아 땀을 닦으며 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잠자는 듯한 들판과 작은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도로 위 자동차들을 헤아려 보는 여유. 그리고 내 건강.

그래서 나는 시골살이의 핵심은 돈으로 환산될 수 없는 그 무엇에 대한 값어치를 제대로 아는 감수성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이번에 새로낸 책도 시골살이 16년을 그런 시선으로 기록 한 것이다.

사실 산비탈을 타면서 지게질을 하자면 두 다리가 바들바들 떨리고 등짝에는 땀이 어찌나 많이 나는지 졸졸 소리를 낼 정도다. 톱질도 힘이 많이 든다. 평지도 아니고 산에서 불안정한 자세로 종일 톱질 하는 게 쉽지 않다. 오죽하면 씨름선수나 레슬링하는 사람들이 기초체력 단련용으로 톱질을 한다지 않은가.

일당 6~7만 원에 품 팔아서 그 돈으로 나무 한 차 사는 것과 비교해 보자. 속된 말로 과연 어느 쪽이 남는 장살까?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천도교 월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천도교 월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땔나무 #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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