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덮인 사라오름, 안 보면 후회할걸?

1박2일 카페리 제주여행... 올레길 걷고, 한라산 오르고

등록 2011.02.23 10:09수정 2011.02.2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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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기설기 쌓은 제주도 돌담
얼기설기 쌓은 제주도 돌담전용호
얼기설기 쌓은 제주도 돌담 ⓒ 전용호

 

노란색 카페리타고 제주도로

 

2월19일. 어스름한 새벽, 장흥 노력도로 달려간다. 카페리 타고 제주도로 1박2일 여행을 떠난다. 가는 날 올레 길도 걷고, 다음날 눈 덮인 한라산을 올라볼 생각이다. 장흥 노력도에서 성산포로 가는 뱃길은 1시간 40분 걸리며, 하루 두 차례(08:40, 15:10) 다닌다.

 

장흥 노력도항에 도착하니 노란 카페리가 기다리고 있다. 배 이름이 '오렌지'호(2,400톤)다. 노란색 카페리가 감귤의 고향인 제주도로 여행가는 기분을 즐겁게 한다. 매표를 하고 배에 오른다. 선실은 좌석으로 되어 편안하게 갈 수 있다. 다만, 쾌속선이라 빠른 속도로 항해를 하니 보니 배 난간에 기대어 바다구경을 하는 낭만은 없다.

 

 온평포구에서 바라본 바다
온평포구에서 바라본 바다전용호
온평포구에서 바라본 바다 ⓒ 전용호

우도를 지나고 성산포항에 도착하면 성산 일출봉이 흐릿한 모습으로 시야를 꽉 채운다. 성산포항을 빠져나와 식당으로 향한다. 찾아간 곳은 오조해녀의집. 식사메뉴는 전복죽 단 한 가지다. 선택할 필요도 없다.

 

구제역으로 통제되고 우회하는 올레길

 

오늘 걸을 올레 길은 3코스다. 올레 1코스와 2코스는 구제역으로 통제되어 갈 수 없단다. 출발점인 온평포구로 향한다. 온평포구에 도착하니 시원한 바다가 펼쳐진다. 마을은 평온하고 조용하다. 제주 마을의 특색인가? 보통 바닷가 마을들이 경사진 곳에 좁은 터를 잡고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제주도 포구마을은 평지에 있어 여유로운 분위기가 물씬 배어나온다.

 

시원한 바닷가를 걸어서 시멘트 포장길로 올라간다. 시멘트 포장길은 도로를 건너고 다시 포장길로 한참을 이어진다. 길가로 얼기설기 쌓은 돌담이 있고, 그 안에는 수확이 끝난 귤나무들과 수확을 기다리는 무들이 있다. 제주도에 무가 이렇게 많이 나나? 무를 수확해서 차에 싣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니 전부 서울로 올라간단다. 하나 깎아먹어 보니 정말 달다.

 

 올레 3코스. 길가로 온통 무 밭이다. 돌담과 어울린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올레 3코스. 길가로 온통 무 밭이다. 돌담과 어울린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전용호
올레 3코스. 길가로 온통 무 밭이다. 돌담과 어울린 이국적인 풍경을 보여준다. ⓒ 전용호

 올레 3코스에서 만난 통오름.
올레 3코스에서 만난 통오름.전용호
올레 3코스에서 만난 통오름. ⓒ 전용호

올레 3코스 길을 계속 시멘트 포장길만 걷는다. 한참을 가다가 지쳐갈 무렵 드디어 기다리던 오름을 만난다. 제주도를 몇 번 왔다 갔지만 평지에 볼록 솟은 오름은 올라볼 기회가 없었다. 사진으로 보던 오름은 둥그렇거나 낙타 봉우리 같았는데,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모양이 물통처럼 움푹 패여 '통오름'이라는 이름을 가진 오름은 마치 말발굽처럼 생겼다. 오목한 곳 안쪽에는 무밭이 조성되어 있다.

 

통오름과 독자봉 오름을 넘으니 또 시멘트포장길을 만난다. 그렇게 삼달1리까지 갔을 때 몸은 지쳐 갔다. 중간 정도 밖에 안 왔는데. 올레 3코스는 정말 지겹다. 다리가 얼얼하다. 내일 한라산을 올라야 하는데…. 구제역으로 우회하라는 안내판을 만난다.

 

설국 세상 속 작은 호수, 사라오름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부지런을 떨어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했다. 휴게소에서 아침으로 해장국을 먹고 산행을 시작하니 7시. 산길은 눈밭이다. 아이젠을 차고 눈길로 오른다. 이렇게 눈이 많이 쌓일 수 있나. 따뜻한 날씨에 눈이 녹아도 내 무릎까지 쌓여있는 것 같다. 등산로에 쌓인 눈은 수많은 사람들이 다녀서 단단하게 다져져 있다.

 

눈길은 벌써 많은 사람들이 지나갔는지 등산객들 아이젠에 밟혀 작은 가루가 되었다. 마치 모래 위를 걷는 기분이다. 사막을 걷는 기분이 이럴까? 주변으로 온통 하얀 세상. 그 길을 등산객들이 꼬리를 물고 올라간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냥 하얀 세상 속을 하얀 마음으로 걷는다. 산길은 완만하게 오른다.

 

속밭대피소를 지나고 사라오름 전망대 오르는 길을 만난다. 0.6㎞, 왕복 40분. 그 앞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으니, 내려오시는 분이 "안 갔다 오면 후회하실 겁니다." 하고 지나간다. 안 가 볼 수가 없다. 사라오름으로 오른다. 생각했던 것 보다 가깝다. 조금 가파른 길만 오르면 쉽게 갈 수 있다.

 

 한라산 사라오름 풍경. 높은 산 흰 눈 속에서도 물이 얼지 않았다.
한라산 사라오름 풍경. 높은 산 흰 눈 속에서도 물이 얼지 않았다.전용호
한라산 사라오름 풍경. 높은 산 흰 눈 속에서도 물이 얼지 않았다. ⓒ 전용호

 사라오름 탐방로를 걸어서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사라오름 탐방로를 걸어서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전용호
사라오름 탐방로를 걸어서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다. ⓒ 전용호

"어! 물이 안 얼었네." 사라오름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주변이 온통 눈밭인데도 물이 얼지 않고서 작은 호수를 만들고 있다. 사라오름은 사라악(紗羅岳)이라고도 하며, 한라산 1324m에 위치한 분화구 호수다. 분화구에 고인 물은 깊지 않다. 마치 커다란 접시에 물이 담긴 것 같다. 하얀 눈밭 속에 검은 물빛이 신비롭게만 보인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한라산 정상에 서서

 

진달래밭대피소에 도착했다.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고 산길을 재촉한다. 산길 주변으로 구상나무들이 눈 속에 줄기를 반쯤 묻힌 채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대단한 나무다. 이 추운 겨울에 15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빛을 과시하고 있다.

 

 한라산 오르는 길. 구상나무가 눈 속에서도 푸른빛을 자랑하고 있다.
한라산 오르는 길. 구상나무가 눈 속에서도 푸른빛을 자랑하고 있다.전용호
한라산 오르는 길. 구상나무가 눈 속에서도 푸른빛을 자랑하고 있다. ⓒ 전용호

 한라산 정상부로 오르는 길
한라산 정상부로 오르는 길전용호
한라산 정상부로 오르는 길 ⓒ 전용호

주변에 나무들이 점점 사라지더니 한라산 정상부분이 커다란 시루를 엎어 놓은 듯 버티고 섰다.  파란 하늘아래 하얀 눈이 하늘과 땅의 경계를 나눈다. 너무나 맑은 날씨에 파란하늘과 대비된 하얀 눈은 더욱 파랗고 하얗게 보인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가파른 낭떠러지 길도 지난다. 발을 헛디디면 저 아래까지 구르겠다. 좁은 길을 마주 오는 사람과 서로 피해가면서 조심조심 오른다.

 

정상으로 계단이 곧게 뻗어있다. 한걸음 한걸음 계단을 밟고 오른다.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모여 있다. 사람들 사이로 한라산동능정상이라는 표지목을 만난다. 9.6㎞, 4시간이 걸렸다. 눈 덮인 한라산 정상. 파랗게 맑은 날씨는 정상에 오른 감동을 더욱 크게 만든다.

 

 한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한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전용호
한라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 ⓒ 전용호

 눈 덮인 한라산 정상 백록담
눈 덮인 한라산 정상 백록담전용호
눈 덮인 한라산 정상 백록담 ⓒ 전용호

흰 사슴을 탄 신선이 내려와서 물을 마셨다는 백록담(白鹿潭)은 하얀 눈으로 덮였다. 물은 조금 있는데 그 마저도 얼었다. 더 이상 갈 수는 없다. 능선을 더 갈 수도 없고 분화구 아래로 내려갈 수도 없다. 하늘을 나누고 있는 정상부 능선을 한참 바라본다. 마음이 정갈해진다. 맑음. 갈망 그리고 엄숙함.

덧붙이는 글 2.19~20 다녀왔습니다.
#사라오름 #한라산 #올레길 #제주도 #카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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