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 민주당 최고위원.
유성호
- 지난해 10월 최고위원으로 복귀하기 전까지 어떻게 지냈나.
"약 2년 동안 쉰 셈인데 공부를 많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권력과 과반 이상의 의석을 차지한 열린우리당의 세력을 갖고 정치를 했지만 서민을 지켜주지 못했고 중산층의 몰락을 막지 못했다. 이에 대한 평가가 총선·대선에서의 처참한 패배였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열린우리당의 다수는 세계화·신자유주의 양극화 현상이 어쩔 수 없는 대세라고 여겼다. 당시에 난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몸부림쳤지만 명확하게 '이게 대안이니 이렇게 가자'라고 말하지 못했다. 18대 국회의원에 불출마하면서 '한나라당의 실패 이후 대안을 준비하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생각으로 공부했다.
마음공부도 했다. 열린우리당의 실험이 실패해 괴롭고 힘들었지만,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그 분노로 나를 불태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처참했다. 그러다 급하게 성과를 바라고 다른 이의 잘못을 탓하면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깨달았다."
- 참여정부에 대한 대안은 정리됐나. "관건은 경제다. 경제 자체도 사람중심으로 사고해야 한다. 2007년에 문국현 후보를 지지한 것도 '사람 중심 경제'를 건설하지 않으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확신 때문이었다. 개발 경제시대 때 수출을 위해 고환율을 억지로 유지한 것은, 우리나라의 경쟁력이 저임금에 기초한 풍부한 노동력과 기계·설비에 대한 투자가 부를 창출하는 선순환 구조에 있었을 당시에는 추구할 만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와 경영자가 얼마만큼 창의적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부가가치의 질과 양이 좌우된다. 그런데도 IMF 이후 끊임없이 일자리를 파편화시키고 외부화시키며 경제를 운용했고 이게 마치 개혁인 것 마냥 환상을 갖게 했다. 10년은 그렇게 버텼지만 앞으로는 수출 중심의 대기업만 버티지 대부분의 중소기업이나 국민들은 도저히 견딜 수 없다. 삼성·현대·SK 등 대기업들이 악성 일자리로 버티는 경영을 계속하면 10년 뒤 세계일류 자리에 있을 수 없다는 단언적 예언도 할 수 있다."
- 창조한국당 시절은 어떻게 정리하고 있나. "문국현 대표가 갖고 있는 '사람 중심 경제'라는 메시지만 있었고, 그럴싸한 당도 없었고 세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메시지를 키워내고 핵심적 의제로 만들어 보자는 것이었는데 그건 성공했다. 지금 민주당도 사람 중심 경제를 말하고 심지어 보수 언론에서 그런 화두가 등장하는 걸 보면 헛되진 않았다. 당시 문국현의 '사람중심 경제'를 만드는 길을 가려면 당에서 나와야겠더라. 그러려면 탈당을 해야 하는데, 한나라당을 탈당한 데 이어 또 탈당하는 것에 대한 속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불출마를 결심했다. 내 마음에서 우러나와, 계산 없이 한 일이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
- 문국현 전 대표에게 '사람중심경제'라는 메시지는 있었지만, 정치적인 한계는 많았다."이명박 대통령도 그렇지만 문 대표도 정당을 기업처럼 생각했다. 그 분들은 기업처럼 하면 정치도 잘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기업은 사장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당 대표와 당원은 원리적으로 같은 선상에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나를 따르면 된다는 방식으로는 정치나 정당은 안 된다. MB가 소통이 안 되는 것도 오랜 세월을 군주적 CEO역할을 해서 생긴 병폐다. 문국현 대표도 마찬가지다. 대선 이후에는 당일에는 관여를 하지 않았는데, 자유선진당과 손잡아 교섭단체 만드는 걸 보고 끝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탈당했다."
- 왜 부산에서 출마하려고 하나."작년 1월쯤 부산시장으로 나가보는 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는데 내키지 않았다. 태어나서 19살까지 살았던 부산이지만 그 이후로 30년 객지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 30년 동안 부산은 가장 일자리 없고, 젊은 사람들이 떠나는 도시가 됐다. 부산을 어떻게 부활시킬 것이냐에 대해 체득하고 이해하는 것 없이 부산시장에 나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지난해 10월에 최고위원으로 당에 돌아왔는데 몇 가지 과정이 있었다. 민주당 내부의 486 정치인 그룹과 작년 내내 공부를 같이 했고 이때 '삼수회'(민주당 내 486 전·현직 국회의원들의 모임으로 '진보행동'의 전신)를 만들었다. 내가 탈당할 때는 486에게 조차 실망한 점이 많았고 희망이 없다고 봤는데, 1년 동안 보니 그들도 반성하고 있더라. 작년 10월 전당대회를 마치고 손학규 대표가 선출된 것도 의외였다. 당시 광주 전남의 지지가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민주당에도 변화의 조짐이 있다는 희망을 걸게 됐다.
이후 손 대표가 지명직 최고위원을 맡았으면 좋겠다며, 부산출마 얘기를 했다. 2003년에 한나라당에서 탈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했을 때도 부산에 출마하려고 했는데 당에서는 서울에서 이겨주는 게 급선무라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접었는데 또 부산 출마 얘기가 나오면서 이게 운명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민주당을 전국 정당으로 만드는 데 보탬이 돼야 나 스스로가 민주당으로 돌아가는 게 용납이 됐다. 그런데 총선 때 영남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면, 의석수와 상관없이 전국 정당의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
진보 개혁세력은 플러스 알파가 없으면 대선 승리가 어렵다. 야권연합과 영남에서의 약진이 있어야 정권교체를 확실하게 할 수 있다. 이게 내가 정치로 돌아가는 가장 큰 이바지 아니겠나."
- 2007년 대선 때 민주당 대오를 이탈해서 문국현 대표를 지지한 정치적 과오에 대한 속죄차원에서 부산으로 간다는 시각도 있다. "그런 생각은 없다. 민주당 당원이나 의원한테는 미안하다. 하지만 개인의 영달을 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닌 만큼 나쁜 짓이라거나 갚아야 할 과오라고 생각하진 않다. 그 때 문국현-정동영 단일화가 돼도 어차피 대선은 졌다고 생각했었으니 탈당은 나름의 도전이었다."
"부산사람들 기질상 바람 불면 세게 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