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미심쩍은 군대

[카이로 통신] 무바라크 '은닉재산' 관련, 하루 만에 말 바꾼 이집트 군부

등록 2011.02.22 12:11수정 2011.02.22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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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현지 시각)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민이 무바라크 퇴진을 이끌어낸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16일(현지 시각)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민이 무바라크 퇴진을 이끌어낸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김덕련
16일(현지 시각) 이집트 제2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서 한 시민이 무바라크 퇴진을 이끌어낸 시위 과정에서 희생된 이들의 모습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있다. ⓒ 김덕련

이틀만에 출근을 했다. 은행도 문을 닫았고 학교도 문을 닫았고 이집트 전역에 보물처럼 흩뿌려져있는 관광지들도 아직은 여행객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람이 몹시 불었다.

 

이 모래폭풍을 뚫고 카이로의 시내까지 출근을 할 것인지를 두고 나는 이른 아침 망설였다. 하지만 시내의 분위기도 파악해야 했고 회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도 궁금했기에 주저하던 마음을 다독였다. 출근길이 몹시 막혔지만 나는 그때만 해도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제 이집트는 괜찮아진 거겠지?"

 

나는 넌지시 내 사무실의 오퍼레이터인 하이디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잠깐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저는 아직도 무서워요."

"무엇이 무서워?"

"치안이요… 경찰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하긴 했지만 믿을 수 없는 건 정작 그들이고요."

 

나는 하이디 말의 의미를 알아들었다. 무바라크 정권의 가장 선두에 서서 사람들을 고문하고 뇌물을 요구하는 것도 모자라, 서슴없이 사람들을 죽인 장본인이 바로 이집트 경찰들이다. 그 경찰들이 다시 자신들의 '일자리'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군은 금융가와 시내 중심가에서만 약간 눈에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바로 며칠 전 카이로 외곽의 교도소에서 죄수들이 무기를 탈취해 달아났다는 소식과, 기존 탈옥수들 가운데에서 아직도 잡히지 않은 숫자가 적지 않았기에 시민들은 본능적으로 적지 않은 두려움을 느껴야했다.

 

오후 2시에 두려움 안고 메트로로 몰려든 사람들

 

"나는 빵을 사가야 해. 우리 동네에는 아이쉬 휘노(샌드위치용 긴 빵)를 파는 슈퍼가 하나도 없어서."

 

하이디는 자신과는 또다른 고민을 안고 있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일찍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기에는 너무나도 이른 오후 2시경, 나는 회사를 나섰다. 출근길 도로의 정체상태가 떠올라 선택한 메트로에서,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절망해야 했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메트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디에 난리라도 난듯이 메트로로, 메트로로, 사람들은 몰려들고 있었다. 그것도 오후 2시에. 어색한 흥분과 기쁨이 대체적인 플랫폼의 분위기였지만, 내가 보기엔 '왠지' 정말로 어색했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어 그들과 역의 모습을 사진찍고 싶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외국인을 바라보는' 엄청난 시선 속에서 슬그머니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 이런 느낌이로군… 외국인에게 더이상 우호적이지 않다는 그 분위기가.'

 

메트로 안에서 나는 거의 떠있다시피 갇혀있었다고 해야 옳았다. 운신을 할 수 없을만큼 메트로 안은 과잉탑승자들로 패닉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야지'라고 말하는 다수의 군중의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하이디가 느끼고 있던 바로 그 두려움이었다.

 

20일,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한 이집트 군

 

 최근 이집트 카이로 시내 전경.
최근 이집트 카이로 시내 전경. 서주
최근 이집트 카이로 시내 전경. ⓒ 서주

2월 20일, 군당국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라는 국민들의 요구를 절대로 수용할 뜻이 없음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군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이집트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있으며, 이집트 어느 지역으로든 그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다'고 까지 말했다.

 

텔레그라프지에서 '군에서도 차기 대권주자가 나온다면'이라는 가정하에 유력한 후보자 두엇을 보도할 즈음이었다. 외신들은 이집트 군이 사회 지배층으로서 얼마나 많은 이득을 취해왔으며 얼마나 많은 혜택을 받아왔었는지를 곁들여 다루었다.

 

그간 이집트군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을 배당받았으며 의료 교육 식료품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왔다. 정권이 바뀔 경우 그들은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할 것이라는 분석은 이집트인이라면 결코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날 군최고위원회는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게 해외은닉재산이 있다는 것은 '서방이 퍼뜨린 루머'라는 입장을 발표했다. 온종일 뉴스 앵커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온신경을 꽂고 있는 이집트 국민들에게 이날 군은 '상당히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을 아주 많이 했다. 군정의 한가운데에 아직도 무바라크가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여전히 긴 빵은 없고, 은행 시스템은 다운되고

 

21일 월요일, 여차하면 이스라엘이 이 지역에서 고립될지도 모른다며 몇 날 며칠을 어지간히 징징대더니, 이날 수에즈운하를 통과하기로 했던 이란의 함대는 수요일로 일정을 변경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이유는 함께 보도되지 않았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에서는 경찰간부 3인이 지난 1월말 유탄을 발사하여 시위대를 사망에 이르게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어제 우리가 궁금해했던 '다음 희생양'들이 틀림없었다.

 

또한 군당국은 무바라크 대통령 본인을 제외한 가족(아내 수잔, 두 아들, 두 며느리, 그리고 큰아들 알라의 장인)이 해외에 도피한 재산이 있으며 이를 동결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문득 자신의 잘못은 쏘옥 빼고 시위가 시작되자마자 애꿎은 내각만 해산했던 무바라크의 교활함이 떠올랐다. 인접한 리비아에서 시위대를 살상하기 위하여 용병이 고용되었다는 뉴스도 아주 오랜동안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와중에 이집트의 대표적인 작가인 닥터 하이칼이 강력한 어조로 '무바라크는 샴엘셰이크에서 당장 나와 외국으로 떠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무바라크는 퇴진하자마자 샴엘셰이크라는 참호 속에 들어가 안전하게 숨어있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많은 이집트인들이 이에 공감했다. 국민들은 무바라크의 그림자조차도 이 땅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다.  군과 무바라크 사이에 있었던 30년의 관계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어떤 일이 있었을 테지만, 아직까지는 알려지지 않은 그 어떤 이유로 이집트 군최고위원회는 드디어 '무바라크 전 대통령에게 해외은닉재산이 있으며 이를 동결해줄 것을 외국에 요청했다'고 국영방송을 통하여 발표했다. 불과 만 24시간도 되지 않아서 입장을 완전히 바꿔버린 것이다. 21일은 대이집트 원조금에 사인만 하면 되는 영국의 수상이 '민주주의가 제대로 신속하게 실행되고 있는지'를 독촉하러 온 날이기도 했다.

 

이날 은행은 문이 열려있었지만 시스템이 다운되었다는 불쌍한 안내방송을 하고 있었다. 나는 ATM에서 약간의 생활비를 찾아왔다. 여전히 긴 빵은 없었지만 수퍼마켓 선반에 가득 채워져있는 우유를 바라보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불안정하지만 아주 완전히 불안한 것은 또 아닌, 너무나도 모호한 기분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지난 1월말 주민자치방범대를 결성해 자신들의 조직력을 확인한 우리 동네 모스크에서는 다시 주민들을 불러모아 벌써 사흘째 아파트 단지 안을 청소하고 있다. 모스크도 심란한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서주 기자는 현재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교민입니다.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2011.02.22 12:11ⓒ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서주 기자는 현재 이집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 교민입니다. 네이버의 <마담 아미라의 이집트여행>에도 실린 기사입니다.
#이집트민주화 #서주선생 #군최고위원회 #무바락 #수에즈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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