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일의 평론집과 가라타니 고진의 사상을 소개한 번역서.
곽영신
그렇다면 여기서 '소조'는 누구일까? 어떤 논쟁이 파탄났다는 걸까? 이 논쟁과 최고은은 무슨 관련이 있으며, 김영하는 왜 온라인상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을까?
이야기는 각 신문마다 신춘문예 발표가 난 1월 1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김영하는 낙선한 문학지망생을 위로하는 '작가는 언제 작가가 될까'라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그는 신춘문예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피력한 뒤 "누군가를 작가로 만드는 것은 타인의 인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긍지"라며 "인정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고 스스로를 작가로 선언하고 제멋대로 써제끼는 새로운 작가군의 출현을 고대한다"고 썼다.
그런데 이 글에 <한국문학과 그 적들> <가라타니 고진과 한국문학> 등의 저작으로 한국문학에 날선 비판을 날리는 데 앞장섰던 평론가 조영일이 자신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비평고원'에 반박글을 남겼다. 조영일의 커뮤니티 아이디가 바로 '소조(小鳥)'다.
그는 김영하의 충고에 대해 "'작가로서 누릴 것은 다 누린 자'(즉 배부른 자)의 오만으로 비춰질 위험이 있다"고 받아쳤다. 계속 낙선을 일삼는 지망생들에게는 궁핍한 작가의 현실과 소수 독점구조의 한국 문단시스템 안에서 괜한 시간낭비 말고 다른 직업을 찾으라면서 대신에 훌륭한 독자가 돼라고 조언했다. 덧붙여 그는 "중요한 것은 기존 제도를 거부하는 것도, 자신의 자긍심의 고립되는 것도 아닌, 직접 제도(길드)를 만드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학지망생들에 대한 조언으로 시작된 이 논쟁은 바로 작가론, 예술론으로 확대됐다. 김영하는 '나르시시즘, 과대망상 그리고 예술가', '낭만주의자는 어떻게 현실을 보는가'라는 잇단 반박글에서 "예술가는 정신적 어린이들이 나르시시즘으로 하는 것"이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당분간 우리 자신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이게 결국 내가 낭만주의적 예술가관으로 돌아오는 이유"라며 내면의 예술혼을 강조하는 낭만적 작가관을 펼쳤다.
이에 대해 조영일은 다시 '젊은 문학지망생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글에서 "자신만 바꾸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결국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며 "혁명가가 반드시 예술가인 것은 아니지만 예술가는 모두 혁명가"라고 주장했다. 작가의 사회적․역사적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순수·참여문학 논쟁의 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