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교를 빛낸 인물전두환 장군(대통령 역임)과 노태우 장군(대통령 역임)의 사진이 나란히 게시되어 있는 대구의 모 고교 중앙 현관 풍경
정만진
추측하건대, 우리나라 국민 열 명 중 아홉 명은 말할 것이다. "대구는 민주화운동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하지만 아니다. 대구는 1960년 4월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2.28학생의거가 일어났던 민주화의 성지(聖地)이다.
그런데도 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뇌리 깊숙히 '대구는 민주화 운동과는 관련이 없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되었을까. "마산" 하면 '김주열'을 떠올리고, 광주항쟁 직전의 부마항쟁도 기억하면서, 어째서 "대구" 하면 4월혁명의 위대한 전초였던 2.28학생의거를 연상하기는 커녕 오히려 그 반대인 '군사 독재의 본거지', '보수의 진원지' 같은 어두운 빛깔에만 주목하는 것일까.
대구의 모 고등학교에 가면 중앙 현관에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다. 그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건 근무하는 교직원이건, 아니면 교장실이나 행정실을 찾아온 방문자이건 가릴 것 없이 이 두 사람의 거대한 사진을 눈에 담지 않고는 건물 안으로 진입할 수가 없다. 두 사람의 사진은 무엇 때문에 그 자리에 위풍당당히 게시되어 있는 것일까. 학교가 두 사람의 사진 위에 커다랗게 내건 설명에 따르면 그들이 <母校를 빛낸 同門>이기 때문이다.
'모교를 빛낸 동문' 전두환과 노태우이렇게 고등학교 중앙 현관에 나란히 내걸린 두 사람의 사진은 대구 사람들의 인식을 잘 말해주는 상징으로 해석되지만, 상징은 또 있다. 그 상징은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있다. 이 학교에는 대로변에서 잘 보이는 곳에 항일운동 기념비가 서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또 다른 비가 하나 서 있다. 바로 그것이다.
항일운동 기념비는 일제 때 독립을 위해 대구사범학교(경북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 교사들이 주축이 되어 오랫동안 투쟁하고 희생된 정신을 기려 세워진 것이다. 그 옆의 것에는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라는 비문의 주제문과 그 아래에 적힌 '대통령 박정희'라는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두 기념비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도 없다. 민족문제연구소가 펴낸 친일인명사전에 따르면, 박정희는 1942년 10월 당시 1년에 조선인은 1명 정도만 입학했던 일본육사에 '한번 죽음으로써 충성'이라는 혈서를 쓰고 들어갔다. 그리고 그는 일본 육사 졸업 후 독립군들이 활약하던 만주에서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장교로 근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