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
남소연
이 글은 개헌에 대한 찬반 의사와는 무관하다. 따라서 이명박이나 박근혜 중 어느 한편을 비판·두둔하려는 의도 따위는 전혀 없다. 중요한 것은 강 의원의 발언이 박근혜 전 대표가 기왕 선택해 온 '침묵과 방관' 전략을 매우 설득력 있게 문제 삼고 있다는 점에 있다.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강 의원이 정치인이듯이 박 전 대표도 정치인이다. 게다가 박 전 대표는 차기 집권자로 유력시되고 있는 '중요 인물'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의 정치적 본질에는 아버지 박정희가 있다는 점을 놓칠 수 없으며, 박 전 대표 자신도 그것을 조금도 부인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통치를 사전적으로 해석하면 '독재'가 되겠으나 그 당시 시대 상황 전체를 보면서 유신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 시대의 인권탄압에 대해서는 자식 된 입장에서 그 피해자들께 깊이 사과하고 싶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이 나라 전반의 의식 풍조에 관한 것입니다. 실컷 잘 먹고 나서 그릇 한두 개 깬 것만 가지고 욕을 하는 풍토라면 그 나라는 많은 애국자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가 매도당하는 세상에서 제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더라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해온 것은 저의 가족사를 떠난 문제입니다." - 박근혜, <신동아> 1998년 10월호박근혜의 말에 의하면, 강 의원 부부는 유신정권 '인권탄압의 피해자'이며 '깊이 사과하고 싶은' 대상이다. 동시에 (모순되게도) 그들은 '실컷 잘 먹고 나서 그릇 한두 개 깬 것만 가지고 욕을 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박근혜는 아버지가 매도당하는 세상에서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고 했으며, 그것은 '가족사를 떠난 문제'라고 단언했다. 이렇게 중대한 문제라면, 박근혜는 응당 답변을 해줘야 하지 않을까.
노골적인 '침묵과 방관'에 노골적인 문제 제기 앞서 말했듯이 박 전 대표는 이명박 정부 들어 '침묵과 방관' 전략을 구사해 왔다. 그는 2007년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3년여 동안 정치인으로서 아직까지 한 차례도 공식 인터뷰나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그는 당사 현관이나 국회 복도 같은 데서 기자들과 잠시 만나 짧은 문답을 주고받았을 뿐이다.
3년 이상을 이렇게 해 왔다면 박 전 대표의 '침묵과 방관'은 일관적이라기보다는 노골적이라는 말이 적합하다. 일부 언론은 이런 전략을 '신비주의'라는 개념 미상의 언어로 칭찬하기도 한다. 반면에 차기 대선 선두주자로서 모험을 택하기보다는 안전을 꾀하는 보신주의라고 보는 의견도 있다.
박 전 대표는 4대강 사업과 부자감세 철회 여부 등에 대해서 거의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는 미디어법에 대해서는 여야 양비론을 펼쳤다. 물론 그의 이런 태도는 때로 기회주의적이라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예외적으로 박 전 대표는 세종시법에 대해서만은 단호한 입장을 피력하여 법 개정을 무산시켰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서는 그를 '원칙과 신뢰의 정치인'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그가 만약 세종시법 개정에 찬성했더라면 그는 확실히 더 큰 손해를 감수해야만 할 상황이었다. 또한 그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충청도 표를 계산한 것이라는 관점도 있다.
박근혜의 '촌철살인'에 담긴 공격성 사실 박근혜는 누구보다도 단호한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단호성은 극히 짤막한 언명으로 정적의 의표를 찌르는 화법으로 나타나왔다.
박 전 대표는 노무현 정부의 기자실 통폐합 조치에 대해, '한 마디로 나라의 수치'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초기 그는 이상득 의원을 향해, '정치의 수치'라고 했으며, 이재오 의원에게는 '오만의 극치' 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둘 다 자기 뜻에 반하는 공천 행위를 공격하며 구사한 말이었다. 그는 자기 사람들이 공천에 탈락하자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격정적인 말로 자기와 국민을 동일시하는 의중을 내비치기도 했다.
이런 화법을 '촌철살인'이라고 칭찬하는 언론도 있다. 반면에 '외마디 정치'라고 폄하하는 의견도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되는 것은 칭찬이든 비판이든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인다'는 이 말에는 다분히 공격적 개념이 함의되어 있다는 점이다. 결국 그는 자기 이익을 지키는 일에는 누구보다도 단호하며 공격적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박 전 대표가 2004년 MBC <시선집중> 전화 대담에서, 손석희 앵커에게 "지금 저하고 싸움하시자는 거예요?"라고 말한 일화는 유명하다. 그는 지난 1월 23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사랑의 바자회'에서 국제과학 비즈니스 벨트나 개헌 등 정치권 현안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오늘 행사에는 관심도 없고, 다른 질문만 한다"라고 유감을 표한 후 침묵으로 넘겼다. 또한 행사 후 기자들이, "복지를 돈으로만 보지 말고, 사회적 관심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무슨 의미냐?"고 묻자, "한국말 못 알아들으세요?"라고 되레 질문자를 힐난하기도 했다.
누가 '나쁜 대통령'인가, 노무현인가 박정희인가 이명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