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 1월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원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신 : 8일 오전 2시 37분] 검찰측 제보자 남씨 "이 사건은 아주 윗선에서 만들고 있다" 한만호 전 대표, 법정에서 주장... 검찰측 "일방적 주장"
검찰 측에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남아무개씨가 "이 사건은 아주 윗선에서 만들고 있다"며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를 압박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이러한 진술은 7일 오후 8시부터 11시 50분까지 진행된 한 전 대표와 정아무개 전 경리부장의 대질신문에서 나왔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명숙 사건'은 6월 지방선거라는 정치일정을 앞두고 정치검찰이 만들어낸 것"이라는 한 전 총리쪽 주장에 힘을 보태주게 된다. 하지만 검찰은 "한 전 대표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깎아내렸다.
"윗선이 어디냐는 질문에 '아주 윗선이다'라고 대답해" 한 전 대표의 주장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초 남씨가 검찰조사를 받고 있던 한 전 대표를 찾아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데 검찰수사에 협조해 달라"며 "이 사건은 윗선에서 만들고 있어서 협조하지 않으면 무척 힘들어진다"고 압박했다.
이날 법정에서 한 전 대표는 "제가 남씨에게 '윗선이 어디냐?'고 묻자 그가 '아주 윗선이다'라고 대답했다"며 "남씨는 이렇게 제가 검찰수사에 협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했다.
남씨는 '한명숙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을 검찰에 제보한 인물로 알려졌다. 특히 한 전 대표는 지난해 검찰수사 초기에만 해도 "한 전 총리에게 돈을 건넨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하지만 남씨로부터 '겁박'(한 전 대표의 표현)을 받자 진술은 바뀌었다.
특히 남씨는 한신건영의 전직 고위임원에 의해 "법정에 증거로 제시된 회사의 채권회수목록을 짜고 만든" 인물로 지목되기도 했다. 정 전 부장도 이날 남씨 등의 요구로 채권회수목록을 만들었다고 거듭 진술했다.
지난해 12월 한 전 대표를 면회했던 홍영표 민주당 의원은 "남씨가 검찰에 와서 교도관에게 나가라고 하는 등 큰소리를 쳤고, 한 전 대표에게 채권회수 목록을 보여주면서 '이게 검찰에 다 들어갔으니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준 사실을 인정하라'고 협박했다고 한다"고 전한 바 있다.
홍 의원은 "한 전 대표는 그런 남씨가 자기를 더 오래 징역살이를 시킬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 이후 최초 진술을 바꿔 한 전 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7일과 10일 한 전 대표와 정 전 부장이 주고받은 편지를 놓고 검찰과 한 전 대표의 해석이 엇갈렸다.
두 편지에서 한 전 대표와 정 전 부장이 지방선거 결과와 그 이후를 우려한 대목은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이 건너갔다는 방증이라고 검찰은 주장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이미 검찰수사에 협조하기로 작심한 이후 쓴 편지들"이라고 반박했다.
한 전 대표가 편지에서 선거 이후를 우려한 이유는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건넸다는 자신의 거짓진술이 불러올 후폭풍 때문이었다는 것. 그는 편지에서 이러한 우려를 직접적으로 쓸 수 없었던 것은 "검찰 수사관의 편지 검열"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는 "검찰의 스크린(검열)을 의식해 편지를 썼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며 "특히 제가 편지에서 사용한 '숙명적'이라는 단어는 (검찰수사에 의해) 떠밀려가고, 강제되는 처지를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검찰쪽은 "요즘 어느 교도소에서 서신검열을 하느냐?"고 한 전 대표의 주장을 반박했다.
"9억원을 조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명숙에게 갔다는 것은 거짓" 이날 법정에서 한 전 대표와 정 전 부장은 한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입싸움을 벌였다. 특히 두 사람은 '9억원 조성'에는 의견을 같이 했지만, 그 사용처를 두고는 크게 엇갈렸다.
한 전 대표는 9억원이 교회신축사업 로비자금(박씨․김씨)과 한 전 총리의 비서 김아무개씨 대여금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한 반면, 정 전 부장은 한 전 총리에게 건너갔다고 기존진술을 유지했다.
하지만 정 전 부장은 대질신문 중간에 "제가 돈을 누구에게 가져다 줬다든지 어디에 썼다고 진술한 적은 없다"고 말해 진술의 일관성에 혼란을 자초했다. 그는 한 전 대표를 향해 "제가 어디에다 돈을 썼다고 얘기한 게 아니지 않느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또한 정 전 부장은 검찰수사 초기에 한 전 총리에게 건너간 돈이 5억원이라고 진술했다. 이는 그가 작성한 '채권회수목록'에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로부터 9억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관련근거를 찾은 뒤 다시 진술을 바꾸었다. 정 전 부장도 한 전 대표의 '검찰수사 협조 전략'을 따라온 셈이다.
이와 관련, 한 전 대표는 "정 전 부장이 9억원이라고 알고 있었다면 내가 9억원이라고 얘기하기 전에 먼저 9억원이라고 얘기했어야 한다"며 "하지만 정 전 부장도 잘 모르기 때문에 처음에 5억원이라고 진술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전 대표는 "(정 전 부장도) 검찰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제가 9억원이라고 얘기하니까) 나중에 4억원을 더 찾아낸 것"이라며 "9억원을 조성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한 전 총리에게 갔다는 것만은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한 전 대표는 "정 전 부장에게 채권회수목록을 (검찰로) 가져 오라고 한 것은 그것이 사실이어서가 아니라 검찰수사에 협조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이렇게 주장했다.
"검찰수사에 협조하기 위한 자료가 뭐가 있겠어? 달러와 현금으로 조성한 9억원이 있고, 채권회수목록이 있다. 채권회수목록도 제가 먼저 얘기한 게 아니다. 검찰이 먼저 '채권회수목록이 있다고 한다'고 얘기해서 (검찰수사에 협조하기 위해) '제가 (정 전 부장에게) 가져오라고 하겠다'고 했다." 또한 한 전 총리의 호칭문제도 입싸움의 대상에 올랐다. 정 전 부장은 한 전 대표가 9억원을 조성하라고 지시할 때 한 전 총리를 '의원님'이라고 표현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저는 한번도 한 전 총리를 '의원님'이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