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9월 3일 오후 양승동 KBS 사원행동 공동대표가 서울 여의도 KBS 본관 민주광장에서 열린 사원행동 총회에서 이병순 신임 사장, KBS 노조와의 문제 등에 관해 참석자들의 의견을 듣고 있다.
남소연
이날 인사 가운데 눈에 두드러지는 인사가 여럿 있었다. 사장 교체와 관련하여 저항했던 젊은 사원들의 모임인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의 공동대표인 양승동 피디가 제작현장을 떠나 심의실로 발령받았고, 저항의 현장에 늘 있었던 현상윤 피디(전 노조위원장)도 시청자센터로 보내졌다.
KBS를 지키겠다며 KBS 앞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과 함께했던 KBS 피디연합회 정책실장 최용수 피디는 부산 총국으로, <KBS 스페셜>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산 쇠고기 문제를 가장 먼저 알렸던 이강택 피디는 수원센터로 발령받았다. 그리고 탐사보도팀장이었던 김용진 기자는 부산총국에 평기자로, 그와 함께 일했던 기자 5명은 다른 부서로 이동됐다.
<미디어포커스> 데스크를 담당했던 용태영 기자는 문화복지팀으로, 탐사보도팀과 미디어포커스팀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큼직한 상을 여러 번 탔던 최경영 기자는 스포츠 중계팀으로 발령받았다. 이밖에도 <미디어 포커스> <시사기획 쌈> <일요진단> 등 시사보도팀에 있던 많은 기자들이 편성팀, 스포츠 중계팀 등 일선 취재와 관련 없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사원행동' 에 가담했거나, 새로운 KBS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인물들이었다.
기자상 도맡아 받았던 최경영 기자느닷없이 스포츠 중계팀으로 가게 된 최경영 기자는 탐사보도팀에 있을 때 <KBS 스페셜>로 방영된 '고위 공직자 재산검증'으로 2005년 11월 '이 달의 기자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이 달의 기자상'을 모두 6회 받았다. '고위 공직자 재산검증' 프로그램은 미국 탐사보도협회(IRE) '네트워크 텔레비전' 부문에서 결선에 오른 최종 5개 작품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4명의 탐사보도팀 기자들은 '고위공직자 재산 검증 시리즈'로 2006년 3월, 제10회 삼성언론상(보도부문)을 받았다.
그는 2009년 여름 이후 휴직한 뒤 현재 미국 미주리 대학 저널리즘 대학원에서 언론학을 공부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9시의 거짓말>이라는 책을 냈다. 저녁 메인 뉴스의 제작과 보도에 직접 참여한 그의 눈에 비친 '9시 뉴스의 실상'은 끔찍했다. 여러 분석을 하면서 특히 '한국 언론의 몰상식'이라는 큰 제목 아래 ▲ 언어의 물타기, 언론의 상징 조작 ▲ 한국 언론이 말하는 '국익'은 부자와 권력자의 이익 ▲ '기계적 중립'은 거짓과 위선에 대한 '물타기' ▲ 월급쟁이 기자들의 '받아 쓰기 저널리즘' ▲ 피상적인 추정과 편견이 사실로 둔갑하다 ▲ 왜곡된 통념을 전파해 기득권 세력을 비호하는 언론 ▲ 그저 출입만 하는 출입기자 등의 소제목으로 방송 뉴스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쳤다.
<9시의 거짓말> 서문에는 이런 내용도 있다.
… 2008년 KBS의 상황은 저를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당시 이명박 정부는 정연주 KBS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감사원과 검찰을 동원했습니다. 또 KBS 이사회를 불법적으로 장악하려 했습니다. KBS의 많은 기자와 피디들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웠습니다. 소리도 지르고, 욕도 하고, 거칠게 몸싸움도 했습니다. 덕분에 공사 직원으로서의 품위를 훼손시켰다며 회사로부터 감사도 받았습니다. 적지 않은 기자와 피디들은 보복 인사를 당했습니다. 저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 종국적으로 역사의 발전은 인간의 진화하는 이성에 기초하며, 민주주의의 발전은 자신의 권리를 깨달은 시민들이 그 기본권을 쟁취하고 넓혀가는 과정입니다. ……냉철하고 합리적인 언론, 이성적이고 현명한 대중이 만들어낼 세상은 그래서 돈의 자유만 추구하는 세상이 아닌, 인간의 자유로 충만한 세상입니다.엔지니어 황보영근씨의 끝없는 수난 '9.17 보복인사'는 기자와 텔레비전 피디뿐 아니라 라디오 피디, 기술직종까지 포함되었다. 1라디오 피디들을 찍어서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모양새였다. 내가 사장이 된 뒤 뉴스 시사 전문채널로 바꾸었던 1라디오에 저항세력이 모여있다고 보았던 모양이었다. 인사 이동 대상이 된 라디오 피디들의 대부분이 사원행동 소속이었다.
기술직종에서는 지방이나 서울 외곽으로 '유배' 보낸 인물들이 있었다. 기술협회장을 지냈고, 수신료 프로젝트팀에서 일했던 박종원씨가 남산 송신소로, 본사 중계제작팀에 있던 강남욱씨가 여주 송신소로 가는 등 '사원행동'에 가담한 것으로 보이는 엔지니어 6명이 하루 아침에 날벼락처럼 지방 송신소 등으로 유배되었다. 그 가운데는 활발하게 자신의 의견을 밝혀왔던 황보영근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본사 품질관리팀에서 김제 송신소로 좌천되었다. 그는 '9.17 보복인사'뿐 아니라 그 뒤 2009년과 올해 초 3개월 정직, 6개월 정직을 잇따라 당했다.
나의 강제 해임이 임박한 시점인 2008년 8월 3일,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는 'KBS 노조위원장 이하 3명은 국민이 제명했다'는 글이 올랐다. 이 글은 당시 KBS 노조 행태를 비판하면서 "KBS 노조위원장 등 3명은 즉시 물러나라. 모든 직책에서 사직하고 일반인으로 돌아가 참회하며 살아가라"고 했다. 이 글에 황보영근씨는 '마이폴'이라는 아이디로 댓글을 달았다.
KBS 노조원이고 엔지니어입니다. 죄송스러운 말 뿐입니다. 만약 정 사장 보내고 낙하산 못 막는다면 수신료 거부운동에 광고 불매운동도 추가하십시오. 현재 조중동 광고불매식으로 하는 겁니다. …그는 이 댓글에 이어, 1년 쯤 지난 2009년 7월, 외부 인사가 작성한 'KBS 수신료 거부 길라잡이'를 KBS 사내 전자 게시판(코비스)에 퍼다 날렸다. '수신료 거부 길라잡이'에는 '수신료와 전기요금 통합고지를 해지하는 방법' 'KBS의 수신료 담당부서에서 확인전화가 올 경우 대응하는 방법' '수신료 납부거부 이유를 둘러대는 방법' 등이 담겨있었다.
이 두 가지에다, 김제 송신소에 좌천된 뒤 그곳에서의 업무와 관련하여 문제제기를 한 것, 사내 게시판에 글을 쓴 것 등을 모두 모아서 KBS는 그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했다. "비록 표현의 자유가 넓게 보장된 포털사이트 공간이기는 하나 스스로 KBS 직원임을 밝히면서 '수신료 거부운동과 광고 불매운동'을 하라는 선동성 의견을 개진해 자신의 목적달성을 위해 자신이 근무하고 있는 공사의 재정적 존립기반마저 무너뜨리는 명백한 해사행위를 해 공사 직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했다" - 징계를 내린 이유 중 하나에 대해 KBS는 그렇게 설명했다.
2010년 2월, 황보영근씨는 김인규 KBS 사장을 '땡이 뉴스의 주역'이라고 표현한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렸는데, 글을 올린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이 글에 대한 '차단' 조치가 취해졌다는 이야기도 인터넷 언론에 보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