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기사가 ‘진따이중’이라며 활짝 웃고 있습니다.
조종안
식사는 뷔페식이었는데 맛은 괜찮았다.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조선족 3세 안전가이드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었다. 한족이라는 버스 기사에게 한국 대통령 이명박을 아느냐니까 몰랐다. 그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아느냐니까 역시 몰랐다.
해서 북한 김정일 위원장, 2000년 남북정상회담, 강택민, 주룽지, 따거 등 떠오르는 인물들 이름을 열거하면서 '김대중'이라고 재차 강조하니까, 가이드와 몇 마디 주고받더니 오른팔을 번쩍 들면서 "진따이중!"이라며 활짝 웃었다.
안중근과 김대중의 공통점은 '평화'글을 작성하다 발견한 게 있다. 안중근(1879년생)과 전직 대통령 김대중(1924년생)의 공통점인데 다름 아닌 '평화'였다. 45년의 시차를 두고 태어난 두 사람 모두 '평화'를 주창하다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고 려순감옥으로 이첩되어 사형을 선고받은 안중근은 항소를 포기하고 감옥에서 <동양평화론>을 집필했다. 내용은 한·중·일 세 나라의 공존과 단결, 동아시아의 평화를 뼈대로 삼고 있다. 안중근은 <동양평화론>을 통해 자신이 사형당한 중국의 려순을 동양 평화의 근거지로 삼아 한·중·일의 '동양평화회의'를 창설하고, 세 나라의 공동은행과 공용화폐 유통 등을 주창한 것이다. (박영희의 <만주를 가다>에서)
김대중은 71년 대통령 선거에서 미·일·중·소 4대국이 한반도에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체결하자는 '4대국 보장론'을 내놓는데, 목적은 평화통일이었다. 대통령 퇴임 후에는 '김대중 평화센터' 이사장을 지냈고, '평화의 사도'라는 별칭도 있다.
야당 시절 몸담았던 '평화민주당'(1988년),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1994년)에 '평화'가 들어가고, '평화를 위하여'(1989년), '정의와 평화의 이름으로'(1991) 등 저술한 책도 있다. 또한, 2000년에는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반세기 가까이 긴장과 대립의 관계였던 남북이 화해의 시대를 10여년 유지하더니 군함이 침몰하고 연평도에 포탄이 떨어지는 등 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현실에서 '평화'는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생각되기에 열거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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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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