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포 입구에서 먹을 것을 파는 가게.
이강진
오토바이를 주차해 놓은 곳으로 다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돌아가는 오솔길 옆에 제법 큰 나무가 오색 천으로 치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시골에 큰 나무나 돌을 서낭신으로 모시는 풍습이 생각난다. 자신의 나약함을 인지하고 그 무엇에 기대는 모습이 아름답다. 사람들이 계곡에 앉아 음식을 먹는 모습을 보니 옛날 도봉산 골짜기가 생각난다. 주차장에 내려와서 산골 아가씨가 파는 군고구마와 옥수수로 점심을 때우고 제일 높은 산을 향해 길을 떠난다.
중간에 나오는 폭포들을 무시하고 국립공원 입구에 있는 유명한 절도 돌아가는 길에 시간이 있으면 들리기로 하고 일단 정상을 향해 오토바이를 달린다. 계속 올라가는 길이다. 이런 식으로 2565m를 올라갈 생각을 하니 끔찍하다. 오토바이가 힘이 없어 언덕을 올라가며 앓는 소리를 낸다.
정상 가까이 가니 웅장한 절이 보인다. 2000m를 넘는 산이라 그런지 무척 춥다. 안에 티셔츠 하나 더 껴입은 것밖에 없는 나는 살을 떼어내는 듯한 차가운 바람에 진저리를 치며 오토바이를 운전한다. 준비 없이 길 떠난 것을 후회하지만, 너무 늦었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경사는 더욱 심해진다. 1단으로 간신히, 사람 걷는 속도 이상의 속력을 내지 못하며 오토바이는 산등성을 오른다. 가끔 아내는 내려서 걸어야 할 정도로 경사가 심하다. 오토바이가 과열되지 않을까 염려도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휘발유가 다 떨어졌다는 신호까지 깜박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길 수밖에 없다. 인간이 할 수 없는 막판에 이르면 신을 찾는다고 했던가? 그러나 휘발유 떨어졌다고 신을 찾기는 그렇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직 정상은 아니다. 조금 떨어진 곳에는 웅장한 절이 있다. 태국에는 산이 조금만 높든가 경치가 좋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예외 없이 절이 있다. 주차장에 공짜로 태워준다는 차가 보인다. 정상까지 태워주는 자동차라 생각하고 차에 올랐다. 그러나 이 차는 절에 가는 관광객을 태우려고 주차한 차다. 절에서 더 많은 입장료 수입을 올릴 목적으로 주차장에 차까지 대기해 놓고 손님(?)을 기다리는 차다. 교회를 비즈니스라고 비꼬기도 하지만 이곳에서는 절도 그러한 비꼼을 받을 만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단 정상에 올라가는 것이 목표다. 절은 돌아갈 때 들려도 된다. 정상에 다 왔다고 생각했는데 정상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절에 온 것이라는 말에 실망감이 그만큼 더 크다. 이제 5킬로 정도만 더 가면 된다고 한다. 경사는 더욱 심하다. 휘발유는 거의 다 떨어지고 추위는 엄습하고, 정말 사서하는 고생치고는 너무하다. 언덕길을 간신히 오르니 차들이 주차해 있다. 정상이다. 오토바이를 세운다. 온몸이 얼어붙은 것 같다.
커피숍이 있다. 정상에 왔다는 기쁨보다는 따뜻한 커피가 더욱 그리워진다. 양지바른 곳을 찾아 따끈한 커피를 마시니 조금 추위는 가라앉지만, 아직도 몸은 떨린다. 정상에는 각국에서 온 관광객으로 붐빈다. 그러나 관광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대형 버스가 이곳까지 올 수 없기 때문이다. 관광객으로는 중국 사람이 가장 많다. 중국 경제가 성장했음을 느낀다. 일본인, 한국인에 이어 지금은 중국인이 세계를 누비며 관광을 하고 있다.
커피숍 테이블 바로 앞에 나뭇가지에 바나나 몇 개 꽂혀 있다. 산새들이 바로 코앞에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바나나를 먹는다. 물론 사진기 셔터를 들이대는 것은 상식이다.
어느 정도 몸을 녹이고 숲속으로 난 조그만 길을 걷는다. 짧은 숲속 길이지만 깨끗하고 깊은 산속에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정상 좋은 위치에는 사진을 찍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중성자 연구소(Princes Sirindhorn Neuntron Monitor) 건물이 들어서 있다. 중성자에 대해 잘 모르지만, 지리적으로 이곳이 좋은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