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식 한나라당 의원
남소연
- 한나라당은 '포퓰리즘은 안된다'며 반대하지만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데.
"민주당의 무상시리즈에는 포퓰리즘적 요소가 분명히 있다. 이걸 포퓰리즘이라고 공격하는 것과 별개로, 정부와 여당은 5년짜리이든 3년짜리이든 자신들의 복지프로그램의 확대를 위한 체계적인 정책발표와 실행을 해야 하고 대안을 갖고 야당과 생산적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그런 것도 없이 포퓰리즘이라고 욕만 하게 되면 맞는 말이라도 '약발'이 안 받게 돼 있다."
- 한나라당의 주장에는 '조세부담을 높이는 복지는 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 같다. 이에 동의하는지. "조세부담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당 내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조세부담이나 국민부담률을 어느 정도 늘리면서도 복지를 늘릴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강한 감세론자가 있는 반면에 지나친 감세는 안 된다는 주장도 있고 추가 감세는 철회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 이명박 정부의 복지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는가."GDP(국내총생산) 대비 복지지출의 비중은 국민의 정부 4.5~5%, 참여정부에서 5~6%, 이명박 정부에서 7%로 복지 예산은 이명박 정부에서 가장 많은 것이 사실이다. 가장 최근 정부니까 당연히 복지 지출이 많이 증대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건강보험의 보장성 급여를 확대했고, 임신·출산 진료비를 지원하는 '고운맘 카드'도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올랐고, 전문계 고등학교는 등록금이 면제되게 했다. 참여정부 보육예산은 1조였는데 지금은 2조로 오르면서 보육기관에 아이를 보낼 때 돈을 안 내도 되는 대상이 10명 중 7명으로 확대됐다. 아동양육수당도 양육수당을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차상위계층 24개월 미만 아동에서 36개월 미만 아동으로 확대됐다.
아동보육 부분은 비교적 책임있게 해왔고, 의료보장성도 많이 확대했지만 나머지 부분에 대해선 적극적인 정책이 없었다. 노동시장에 대해서도 비정규직을 위한 믿을 만한 정책이 뭐 하나 없었다. 그래서 정부·여당은 복지에 대해 전혀 신경을 안 쓰는 사람들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실제로는 복지지출이 확대됐음에도 그런 비판을 받게 됐다. 문제는 국민의 삶이 워낙 팍팍하고, 사각 지대가 많이 있지만 여기에 체계적으로 접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 경제성장률은 회복됐지만 이 효과가 서민에게 미치지 못하니까 전체적인 복지는 향상되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본다.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체계적인 점검이 반드시 필요하다."
- 이명박 정부의 경제운영기조를 뒷받침하는 것이 '파이를 키우면 트리클 다운(낙수효과)이 일어난다'는 이론이다.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인 지난해 성장률이 6.1%였다. 한국에서 트리클 다운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지. "트리클 다운 효과가 약화됐다. 적극적인 소득분배정책, 공정거래 정책과 노동시장 정책과 복지 정책이 따라 가줘야 하는 상황인데, 왜 이런 것을 하지 않는가.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기술을 홀라당 탈취하고 '말 안 들어?'하면 하청에서 떼어내버리는 게 시장경제가 아니다. 공정성과 투명성이 상실된 위에서 운영되는 것은 시장경제라고 할 수가 없고 결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존립기반 갉아먹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낮은 수준의 사회민주주의적 처방들을 왜 못받아들이는지 모르겠다. 낮은 수준의 사회민주주의적 정책수요를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은 유럽 선진국 복지체계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 없이 단편적으로 선진국에서 한 때 했던 모델들을 들고 나오지 말아야 한다. 유럽에서도 복지노선에 대한 수정이 필요했던 이유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400만... 1조면 100만 보장 가능"- 그렇다면 가장 우선적으로 살펴봐야할 복지 사각지대는 어디인가."가장 중요한 것은 실업수당과 제대로 된 직업훈련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총 취업자 2350만 명 중에 임금근로자는 1650만 명, 비임금근로자는 700만 명이다. 임금근로자 1650만 명 중에 공무원, 사립학교 교사, 군인 등 특수직역 연금을 받는 250만 명은 고용보험 대상자가 아니다. 이들을 빼면 1400만 명의 고용보험 가입 대상자 중에 현재 가입된 것이 1000만 명이니, 나머지 400만 명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다. 우선 임금근로자 400만을 어떤 형태로든 점진적으로 사회보장 체계로 들어오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고용보험 가입률을 살펴보면, 고소득, 정규직, 대기업일수록 높다. 비정규직, 저임금, 영세한 사업장일수록 가입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 고용보험이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정규직은 68%, 비정규직은 42%, 10인 이하 사업장은 20~30% 정도의 가입률을 보이고 있다. 소득수준으로 보자면, 소득수준을 3등분했을 때 가장 낮은 층의 가입률은 25% 정도이고, 이들은 1년 이내에 직장 잃는 비율이 70% 정도다. 놀라운 일 아닌가.
외환위기 이후 파견제·도급제의 확대 등 IMF의 여러 가지 노동시장유연화 처방을 따르면서 이로 인해 양산된 비정규직이 복지 사각지대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됐다. 이 부분부터 해결해 들어가야 한다. 내가 재작년부터 이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왔는데, 연간 약 1조 원을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100만 명에 보조해주면, 고용보험은 물론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보험까지 포함하는 4대 사회보험 체계로 편입시킬 수 있다. 예를 들어 소득이 부족해 보험료를 못내는 근로자 100만 명에게 4대보험료 50%를 국가가 보조해주는 식으로 할 수 있다. 나머지 300만 명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내지 않은 보험료를 일시에 탕감해주면서 재가입시키는 등의 가입유도가 필요하다고 본다."
- 100만 명에 지원할 1조 원에 대해서도 재원조달 방편이 필요할 것 같은데."1조 원은 기존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면 충분히 조달 가능하다. 2011년도 예산에서 '일자리 창출' 명목의 예산이 9조5000억 원인데, 그 중에서 행정인턴, 희망근로, 취약계층을 위한 일자리 예산 등 정부 각 부처마다 직접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3조 5천억 원이다. 2009년도 정부가 만든 신규일자리창출 예산 9700억 원 중 절반 가량이 불용됐다. 일시적인 일자리를 만들어서 일자리창출 통계만 늘리려고 하지 말고, 고용보험을 우선 과제로 설정하면, 비효율적으로 집행되는 예산부분을 줄여서 1조 원을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고용보험으로 실업수당만 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노동정책을 펴야 한다. 재취업을 위한 직업훈련도 제대로 하고 구직알선도 제대로 되게 해야 한다. 적극적인 노동시장정책이 작동하려면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없어져서 실업수당의 혜택이 필요한 모두에게 돌아가게 해야 한다. 복지 사각지대를 많이 남겨두고선 무상시리즈 복지로 가자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다름없다. 또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대해 제대로 대처하지도 않으면서 야당의 주장을 포퓰리즘으로 치부한다면 한나라당이나 정부도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이런 식의 공방이야 말로 가장 멍청한 것이다."
"한국은 저부담-저보장, 더 내고 더 보장받아야"- 생산력과 연관되는 복지에민 집중하는 것 아닌가. "이제는 복지체계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가 형성돼야할 때라고 본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복지는 '저부담-저보장' 시스템으로 개인의 가족공동체 단편적인 국가재정시스템으로 메워왔다면 유럽의 사회민주주의는 '고부담-고보장' 시스템으로 가 있다. 우리나라의 GDP대비 복지 예산은 7% 정도인데, 유럽 주요국은 15%가 넘는다. 우리나라 조세부담률은 21%에서 2011년도 예산기준으로 19.3%로 떨어졌다. 세금 뿐 아니라 국민연금 등 각종 사회보험료 부담을 합한 국민부담률은 26.5%에서 2011년도 예산기준 25%대로 떨어졌다. 우리나라가 이런 정도인데, 무상급식을 시행하는 나라는 OECD에서 스웨덴과 핀란드 딱 2개 국가 밖에 없다. 스웨덴은 조세부담률만 35%이고, 국민부담률은 48~50%다. 고부담-고보장 시리즈로 가느냐, 저부담-저보장 시리즈로 가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 합리적인 기준을 정하자는 것이다. 내 의견은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과 국민부담률은 너무 낮아서 지금보다 좀 더 내고 좀 더 받는, '적정부담-적정보장'으로 가자는 것이다.
GDP대비 복지지출이 확대돼야 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국민소득 15000달러 시기의 GDP대비 복지지출의 비중을 비교하면 우리나라는 2005년도에 국민소득 15000달러였고 이때 GDP대비 복지지출이 6.9%였다. 영국은 1989년도에 15000달러에 17.2%였고, 미국은 1983년도 15000달러에 13.9%였다. 우리나라는 이제 국민소득 20000달러 시대에 왔으니 복지지출이 늘어나야 한다는 논의가 있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부터 복지지출이 현저히 적었던 나라다. 이것은 예산에서 국방비가 차지하는 부분이 크고, SOC에 대해 큰 지출이 있었던 요인도 있고 교육관련 예산이 많이 늘어난 요인이 있었다. 그러나 국민소득 20000달러 시대를 맞아 복지지출이 확대돼야 하는 건 부인할 수 없다."
- 한국은 어떤 복지를 지향해야 할까. 유럽식일까 미국식일까. "진보세력은 우리나라 경제의 국제 경쟁력 강화 쪽으로는 매우 소홀하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글로벌 경제에 편입된 상황에서 일국 중심의 경제 구조를 할 수 없다면 국제경쟁력 강화에 대한 고민은 필수다. 보수 쪽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효율화와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잘 알지만, 사회적 안전망 없이는 사회적 저항 때문에 효율성 강화 조치가 먹히지 않는다는 명료한 사실을 보려 하지 않는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라도 최소한의 생활 위험에서 국민을 지켜주고, 희망을 잃지 않도록 기회의 사다리를 많이 놓아주는 사회적 안전망의 강화는 경제의 효율화를 위해서라도 중요하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일각에선 유럽 선진국들이 과도한 복지 때문에 재정위기를 겪었다는 주장을 하는데, 그랬던 나라도 있지만,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은 그렇지 않다. 상당히 많은 복지 제도가 있지만 이들 나라는 재정 위기를 겪지 않았다. 그러나 복지수준이 향상되면서 경제활력을 잃은 건 사실이다. 그래서 80년대 말부터 현금을 지원해주는 복지에서 일자리와 연계한 복지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예를 들어 무작정 실업급여를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구직 알선을 3번 해줬는데, 해당자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업급여 지원을 끊는 식으로 전환한 것이다."
"한나라당, 복지 확대 프로그램에 대한 비전 내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