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도 '인간'이라는 메시지, '인권조례'

시민단체서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한다

등록 2011.01.24 18:43수정 2011.01.2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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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경기도에서 전국 최초로 학생인권조례가 통과되었다. 그리고 서울, 광주 등 여러 지역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한 작업이 분주하다.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책이 출간된 지 10년, 학생인권이 학교 현장에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인권이 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가야 되느냐 말아야 되느냐 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이야깃거리가 되는 정도의 변화는 있었던 것 같다.

 

서울의 학생인권조례에 관한 토론회에서 한 학생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학생인권조례에는 짐승과 인간의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의 현실이 드러나는 것 같다"라고. 학생들이 잘 권리, 쉴 권리, 먹을 권리와 같은 '동물적인 권리'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 그리고 개성을 표현할 권리, 사생활의 자유, 신체의 자유와 같은 인간으로서의 권리도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학생인권조례를 필요하게 만들었다는 뜻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려고 하는 학교는, 이미 다른 많은 나라들, 우리가 더 좋은 교육을 하고 있다고 부러워하는 사회들에서는 대체로 당연한 모습인데도.

 

"학생도 인간이다"라고 말하면 아무도 그 말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학생들에게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들을 보장하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자고 이야기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다.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 등 학생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에 찬성하느냐고 물어보면 찬반 의견은 갈리고, 대개는 반대한다고 답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이런 현실에서 학생인권조례처럼 학생인권의 구체적 내용들을 명시한 법을 만드는 것은 "학생도 인간이다"라는 말을 단순한 '립서비스'의 수준에서 진실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학생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우한다는 것이 최소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그것을 분명히 하는 기준이 학생인권조례이다.

 

민주주의를 가르치며 전혀 민주적이지 않은 독재적 학교 운영이 이루어지는 학교, 인권을 가르치면서도 인권침해가 일상적으로 당연하게 일어나는 학교, 그것을 바꾸기 위한 것이 학생인권조례이다. '진짜로' 학생도 인간이고,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학생인권 제도화의 한계

 

학생인권을 법제화, 제도화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 "학교에서의 두발규제를 금지한다", "학교는 학생들의 건강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런 것을 법문 안에 넣는 것은 왠지 낯선 일이다. 그 낯설음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것을 법제화하는 것 자체가 그런 낯설음을 극복하는 방법인 것일까? 아니면, 이 낯설음은 학생인권 문제를 법의 형태로 풀어나가려고 하는 것의 한계와 문제점을 직관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것일까?

 

사실 학생인권 전반을 법제화하려는 것은 학생인권조례가 처음이 아니다. 2005년부터 준비되어서 2006년에 국회에 발의된 '학생인권법안'(초중등교육법 개정안)도 역시 '두발복장자유화', '체벌금지', '강제야간자율학습보충수업 금지', '차별금지', '학생회 학교 참여 보장' 등 학생인권조례와 크게 다르지는 않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2005년 광주에서부터 꿈틀꿈틀 시작되어서 지금은 전국적 사안이 된 학생인권조례와 거의 비슷한 시점에 나타난 운동이었고, 학생인권조례는 광주에서 주로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논의되고 있었던 터라, 그 당시 청소년운동―또는 학생인권운동―공통의 의제는 학생인권법안이었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인권법안이 비슷한 시기에 나온 것은 우연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부터 계속되어온 학생인권운동이 두발자유화, 학내종교자유, 체벌금지, 강제자율학습 및 0교시 폐지, 학생회 법제화 등등 여러 이슈들을 거치면서 2005년 즈음에 이르러서는 이를 종합적으로 보장할 제도적 성과를 필요로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학생인권 제도화, 포기할 수 없는 과제

 

청소년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 학생인권 운동이 성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학생들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데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학생인권법안 운동을 하던 때부터 학생인권조례 운동을 하는 지금까지도 계속 논쟁이 되어온 것은 있다.

 

"학교가 과연 학생인권조례와 같은 제도를 만든다고 해서 바뀔 것인가?"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문이 동시에 담겨 있다. 하나는 아무리 제도를 만들어도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의 조직적인 행동과 힘이 없다면 학생인권 보장은 이루어지기 어렵지 않겠냐는 의문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더라도 경쟁교육과 같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가 남아 있는 한 변화의 한계가 있지 않겠냐는 의문이다.

 

이 두 질문은 학생인권조례의 한계를 정확히 꼬집고 있다. 설령 학생인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고 하더라도 모든 학교의 문화와 관행과 학칙들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들이 직접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움직이지 않는다면. 또한 아무리 구체적인 학생인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려고 하더라도 입시경쟁 같은 문제가 남아 있는 한 그것은 학교에서 '강제로' 하던 보충수업을 학생들이 성적을 올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하는 형태로 바꾸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아무리 학생들의 참여와 자치를 활성화시키려고 해도 학생들이 공부에 치어서 시간도 의지도 없다면 여전히 학생회는 별 다른 힘을 못 쓸 것이다. 학급당 학생 수나 교육 예산의 문제 등도 모두 얽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인권을 제도화하는 일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는 과제이다. 왜냐하면 학생인권조례는 그런 현실을 극복하고 나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보장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학교와 교육, 자기 생활의 주인이 될 수 있는 조건은 학생들이 좀 더 사람답게 살고 행복하게 다니는 더 좋은 교육을 만들어가기 위한 발판이다.

 

특히 서울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지지 속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더 끈끈하게 학교 현장에 학생인권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시민단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주민발의 운동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2011년 4월 말까지 8만명이 넘는 서울시민의 서명을 모아야 한다. 주민발의법상 주민등록번호와 주소를 다 적어야 하고 자필로만 서명할 수 있다. 거기다가 만19세 이상만 서명할 수 있기 때문에 정작 당사자이자 학생인권조례에 가장 우호적인 학생들은 서명에 참여할 수 없어 그 과정은 길고 험난하기만 하다.

 

그러나 그런 과정이 더 나은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고 학생인권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각인되는 과정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서울 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서명에 힘을 보태주실 서울 시민 분들은 학생인권조례 제정 운동 서울본부 사이트에서 주민발의 서명용지를 다운 받아서 서명에 참여해주시길!

덧붙이는 글 |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1.24 18:43ⓒ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공현 님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입니다. 이기사는 천주교인권위원회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학생인권법안 #체벌금지 #두발자유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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