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1,2) 존 라빈스는 "먹는 것은 즐거워야 하고, 축복이고, 생명과의 친교여야 한다"고 말한다.
최봉실
그런데 배스킨 라빈스 아이스크림 회사의 상속자인 존 라빈스는 미국의 지고불변한 특징인 줄 알았던 육식 문화가 결코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변해야만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세한 이유를 알리기 위해 방대한 자료와 현장 연구를 바탕으로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Diet for a New America : How your food choices affect your health, happiness, the life of your future, 1998, 존 라빈스 저, 아름드리미디어 펴냄)라는 책을 냈다. 그 즈음 미국의 가장 큰 공영 방송 중 하나인 KCET는 '새로운 미국을 위한 식생활'(Diet for a New America, 위 책의 제목과도 같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미국 육식 문화의 변화를 촉구했다.
미국의 육식 문화가 변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하지만 존 라빈스는 그 꿈을 위해 '그레이트 아메리칸 식품업계'의 상속을 거부하고, 나아가 자기 인생을 걸었다. 이 책이 출판된 후 비로소 현대 육류 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이 미국의 공개적인 토론에서 언급되기 시작했고, "출판 후 4년간 미국의 소고기 소비가 18% 떨어졌다." (p.302)
그는 왜 개인의 영달을 위한 꿈을 거부하고, 그토록 간절히 미국인들의 건강과, 나아가 이 세상의 건강한 삶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한 걸까. 그리고 축산업계와 그 이익 집단은 철저히 숨기기 원하는, 그가 발견한, 알리고자 한 그 진실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그의 책 <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통해 그 진실을 조금 꼼꼼히 들여다볼까 한다. 이 책은 지난 2010년 11월 말 구제역이 발발하기 전부터 친구들과 3개월을 정해 채식 실험을 하면서 함께 읽게 된 책이다. 이 책의 한글판이 2000년에 나왔기에 이미 읽은 이들이 많겠지만, 아직 안 읽은 사람들을 위해, 그리고 읽었어도 이래저래 바쁘게 살다 보니 잠시 잊었을 감수성이 회복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의 내용을 나누고 싶어졌다.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권으로 구성돼 있다. 존 라빈스는 현대 육류 생산의 뒤안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것으로 우리는 어떠한 일을 겪고 있는지를 밝히며, "식습관이 우리 자신의 건강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활력과 우리 세계의 건강,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의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깨달음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에 앞서 '동물'이란 존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우리 안에 일어나도록 그는 책의 첫 1부를 정성껏 할애한다. 이 글은 그 1부에 대한 서평이다.
죽어가며 새끼 젖 먹이는 어미소... 동물 존중하는 법 배우지 못한 우리1부에서 그는 "완벽한 자료에 독자적인 검증까지 거친 실제 사건들이 수없이 많다"는 표현을 반복하며 동물에 대한 자신의 이해가 어떻게 깊어져 갔는지에 대해 고백한다. 동물이 인간 생명에 대한 존중과 더불어 인간에 대해 동료애와 헌신과 충성심을 바쳐 온 이야기, 동물이 다른 동물들의 생명을 구하러 나선 이야기 등이 책에 담겨 있다.
그들이 보여 온 헌신과 이기심 없는 사랑, 긴급 사태 때의 지능적이고 용감한 대처, 종의 경계를 뛰어 넘어 생명을 존중하고 경외할 줄 아는 자질이 담긴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겨울밤 화롯가에서 오래오래 전해 내려오는 우리의 조상, 혹은 영웅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 속에 뭔가 알 수 없는 뜨거운 열망이 어린아이의 가슴을 터질 듯 채우는 느낌이 이런 걸까 싶다. 먼 미래를 강렬히 바라보며 '어떻게 살아야겠다' 다짐하는 고귀하고 순수한 꿈이 환한 빛을 발하는 순간 갖게 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동물의 새끼도 사람의 새끼와 다르지 않게 그들 안에 있는 신성한 불꽃의 도움으로 자신들의 자질을 표현하기 위해 신의 무릎에서 태어난다. 우리처럼 삶을 갈망하며, 존재 자체로서 인정받고 그들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이 되기를 바라며 태어난다." (p.63)책을 읽은 얼마 후 살처분으로 피 땅이 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그 메아리가 울려 왔다. 지난 18일 '살처분 어미 소의 모정, 또 방역 요원 울렸다'는 기사가 떴다. 강원도 횡성의 살처분 현장에 참여했던 한 축산 전문가가 전한 상황이다.
"어미 소를 안락사시키기 위해 근이완제 석시콜린을 주입하는 순간 갓 태어난 듯한 송아지 한 마리가 곁으로 다가와 젖을 달라며 보채기 시작했다. 어미의 고통을 알 리 없는 송아지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살처분 요원들의 가슴이 무거워졌다. 소마다 약에 반응이 나타나는 시간이 다르지만 대개 10초에서 1분 사이 숨을 거둔다. 하지만 곧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어미 소는 태연히 젖을 물리기 시작했다. 30초, 1분….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어미 소는 다리를 부르르 떨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텨 냈다. 주위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 모두 어미 소와 송아지만 바라본 채 2~3분이 흘렀을까. 젖을 떼자 어미 소는 털썩 쓰러졌고 영문을 모르는 송아지는 어미 소 곁을 계속 맴돌았다. 현장의 요원들은 비극적인 모정에 얼굴을 돌린 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노컷뉴스> 1월 18일 자)지난 2010년 12월 말 원주시 문막읍의 한우 농가에서도 수의사 조아무개(39)씨는 살처분으로 어미 소와 송아지의 이별을 고통스럽게 지켜봐야 했다.
"새벽녘 깜깜한 축사 보온등 아래서 근육 이완제를 맞고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어미 소를 큰 눈으로 지켜보던 송아지들은 눈물이 그렁한 채 울부짖었고 갓 태어난 새끼는 누워서 발버둥치는 어미의 젖을 찾아 머리를 들이밀기도 했다. … 조 수의사는 '주사를 놓으려니까 한 어미 소는 새끼를 막아서서는 꼼짝도 안 하고 지키고 서 있기도 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1월 19일 자)이런 사례들을 보며 우리는 동물의 모성과 사랑의 본성에 대해 잠시 깊이 생각하게 되지만, 그들에 대한 우리의 빈곤한 이해를 극복하려면 갈 길은 여전히 멀어 보인다. 동물들을 '있는 그대로의 존재로, 복잡 미묘하고 아름다우며 신비로운 창조물'이면서, 동시에 이 지구별을 함께 살아가고 마땅히 누리며 살아갈 권리가 있는 형제요 동료로 존중하는 법을 배울 기회를 우리는 좀처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동물은 사람의 먹이가 되기 위해 '태어나고 죽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