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막사 앞에서 필자(1970년 겨울)
박도
어느 하루 소대내무반에 갔더니 땅굴막사 바닥에 짚을 깔고 지냈다. 땅굴 바닥에서 습기가 올라오자 마을에서 짚을 얻어다가 깔아 습기를 막았는데 그 먼지에 목이 메이고 화재의 위험성도 있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내무반장에게 마을에서 짚을 얻어다가 멍석을 짜 바닥에 깔면 먼지도 일지 않고, 화재 위험성도 없을 거라고, 멍석을 짜라는 지시를 했다.
그 며칠 후 소대내무반에 들어가니 내무반 바닥에 망석이 깔려 있었다. 그래서 내무반장에게 그새 멍석을 다 짰느냐고 물었다.
"멍석 짜는 게 장난이 아닙니다. 마을에 짚을 구하고자 갔더니 산촌이라 짚이 귀해 얻을 수도 없을뿐더러, 멍석 하나 짜자면 겨울이 다 지날 테고, 언제 다시 부대 이동할지 모르는 처지이기에 한밤중에 마을로 내려가 어느 집 뒤꼍 처마 밑에 달아놓은 멍석을 하나 업어왔습니다. 소대장님은 그냥 모르는 척 해주십시오." 나는 내무반 바닥에 깔아놓은 멍석을 당장 걷어 주인에게 돌려주라는 말은 차마 못했다.
참 추운 겨울이었다. 설날을 며칠 앞둔 날 양주군 광적면부녀회에서 우리 소대원에게 떡국을 끓여준다고 군목이 대여섯 부녀자를 인솔하여 산중부대까지 올라왔다.
그해 긴 겨울이 끝날 무렵 갑자기 부대교체 명령이 내려왔다. 우리 소대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완전군장을 꾸리고 출발준비를 했다. 그 바쁜 와중에 나는 내무반장에게 내무반 멍석을 제자리에 갖다 두고 오라고 지시했다.
우리 소대가 이동한 곳은 발랑리마을에서 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양주군 광적면 비암리 마을 앞산 계곡이었다. 부대 이동 뒤 비상 첩보전화도 확인 겸 전화가 가설된 마을이장 집으로 인사차 갔다.
"이번에 온 부대가 발랑리 마을에서 왔소?""네, 그렇습니다.""그 마을에 내 사촌이 살지요. 그 아우가 그러더구만요. 이번 부대는 양심이 곱더라고요.""네?""지난 겨울 산에서 군인들이 내려와 짚을 달라고 하기에 쇠죽 여물용 짚이라고 딱 잘랐더니 이튿날 아침 뒤꼍의 멍석이 보이지 않더래요. 그래서 뒷산 군인의 소행으로 짐작이 갔지만, 얼마나 추웠으면 그걸 가져갔을까 싶어 포기하고 말았는데, 부대 이동 날 멍석을 제자리에 갖다 두고 가서 엄청 고마웠다나요.""아, 네,"나는 그 칭찬이 멋쩍어 뒤통수를 긁적이며 부대로 돌아왔다.
오래 전, 그 옛날이 그리워 아내랑 그곳 일대를 찾아가자 부대자리는 흔적도 없고, 대신 아파트단지와 골프장으로 어리둥절케 했다. 하기는 그때 무장공비로 내려온 김신조가 지금은 서울의 한 교회 목사님이 될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아마도 지금의 휴전선 155마일 철조망도 그 언젠가는 흔적도 없어질 테고, 후세인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들이 한낱 전설로 남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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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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