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신용산역 부근 재개발 지역내 5층 건물에서 철거민들이 농성을 벌이는 가운데, 경찰특공대가 대형 크레인에 매달린 컨테이너를 타고 옥상으로 투입되자, 철거민들이 화염병을 던져 컨테이너 내부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다.
권우성
철거된 남일당, 철거된 기억2010년 12월 1일 '남일당'이 철거됐다. 2009년 1월 20일 철거민 5인과 경찰특공대 1인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681일째, 철거민 5인의 장례를 치른 지 327일째, 대법원이 철거민들에게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워 아버지를 용산참사에서 잃은 이충연 용산4구역 철거민세입자대책위원장에게 징역 5년이라는 중형을 확정한 지 21일째 되는 날, 대한민국 재개발 잔혹사에 가장 굵은 글씨로 영원히 기록 될 용산참사의 현장 '남일당'이 사라졌다. 40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설 자리를 비워주고 힘없이 무너졌다. 한 시대가 '남일당'과 함께 지나가는 듯하다.
2009년 용산 '남일당'은 시대의 상징이었다. 이 나라의 허약한 민주주의가 매일 죽어가던 곳, 서민들의 소소하지만 소중한 하루하루가 길바닥에 내팽개쳐지던 곳이 바로 '남일당'이었다. 우리를 쫓아내려는 용역회사 직원들과 구청직원들에게 끌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서로 어깨를 걸고 무작정 주저앉아 버티던 곳, 현수막 한 장만 내걸어도 득달 같이 달려와서 성능 좋은 확성기로 고함을 치며 방패를 들고 우리를 둘러싸던 민중의 지팡이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허리춤을 잡혀 질질 끌려가던 곳,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강로 2가 63번지 지하 1층, 지상 4층 금·은 귀금속 판매점 남일당이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던 그 살구색 건물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
2010년 12월 30일은 용산참사 대정부 협상 타결 1년이었고, 2011년 1월 9일은 용산참사 철거민 열사 5인의 장례를 치른 지 1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리고 오늘 2011년 1월 20일은 지금은 없어진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대한민국 재개발 잔혹사에서 지워지지 않을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꼭 2년이 된다. 이제 용산참사는 이렇게 억지로 숫자들을 가져다 붙이며 의미를 부여할 때에만 기억될 수 있는 옛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다. 홍대 앞 '작은 용산' 두리반의 투쟁이 1년이 넘었고, 성남 단대동에서, 일산 덕이에서, 서울 신계동과 상도동에서 살던 집에서 쫓겨나 천막치고, 노숙하며 "여기 사람이 있다"고 흐느끼는 사람들이 수백, 수천에 이르지만 남일당과 용산은 그렇게 우리들에게서 잊혀져가고 있다.
생존권 투쟁을 하는 이들 중 절박하지 않은 이들이 누가 있으랴. 100일 가까운 단식농성을 하며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의 상징이 되었던 기륭전자 노동자들, 77일간의 옥쇄 파업 기간 내내 남편과 아버지를 기다리며 평택 공장 정문에 천막을 치고 살았던 쌍용차 가족들, 정규직과 해고자복직을 위해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엠대우 노동자들, 모두 저마다의 비장한 사연 하나씩을 가슴에 품고 자본이라는 바위에 부딪혀 깨지는 계란처럼 싸우고 있지 않은가?
40년 전 스물두살의 청년 전태일이 자신의 몸에 불을 사르며 절규했던 요구가 하루 임금 150원 보장, 노동시간 12시간으로 축소, 그리고 매주 일요일에는 쉬게 해달라는 것뿐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자. 생존권을 걸고 투쟁하는 이들이 많은 것을 바랐던 시절은 없다. '요구사항'이란 큼지막한 글씨를 쓰고 내용을 정리하고 읽어보면, '겨우'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기본적 요구들을 주장하며, 그렇게들 목숨을 걸며 싸움을 한다. 곁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안타깝다 못해 욕지거리가 튀어나올 정도로 참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 민중들은 그렇게 모든 것을 다 걸고 투쟁에 나서도 너무나도 소박한 그 작은 바람조차 대부분 얻어내지 못하고 만다.
그러니 2년 전 겨울 용산 한강로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라 망루를 세웠던 그들이 원했던 것 역시 대단한 것이었을 리가 없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잊혀가는 것이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하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그들을 남일당 옥상에 불러모아,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절규라도 한번 외치게 해 보고 싶다. 아니면 내가 그들 대신"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쫓겨나도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라고 소리 한번 지르고 싶다.
대학 학생회 간부라는 어줍지 않은 오만함이 내 어깨를 올라타고 있을 어린 시절부터 철거민들의 투쟁을 어깨 너머로 보아왔다. 땀 흘리는 노동이라는 것은 해 본 적이 없는 하얀 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세치 혀로 종종 혁명을 입에 올리며 잘난 체하던 비루한 청년의 눈에, 철거민들의 투쟁은 너무나도 무모하고 과격해 보였다. 세월이 지나 인권단체에서 활동을 시작한 후에도 철거민들하고는 만나는 일이 없기를 바랄 정도로 철거민들은 답답하고 과격한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1년 동안 용산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철거민들을 겪어 보니 내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용산에서 만난 그들은 그저 동네 전파사 형님이나 정육점 아저씨였고 포장마차 이모님이거나 시장 반찬가게 아주머니들이었다. 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건물 옥상에 망루를 짓게 하고, 용역회사 직원의 귀를 물어뜯게 만든 배후는 결국 더 많이 내쫓고 몰아내야 배가 부른 건설 자본이고, 그 자본과의 달콤한 밀애를 오랫동안 즐기고 싶은 이 땅의 권력,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이 내 옆집에 사는 것은 구질구질하고 짜증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로 당신과 우리들이다.
여기 망루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